[과학기술이 미래다] <8>대통령 자문 '경제과학심의회의'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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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대통령 직속기구 경제과학심의회의 현판식 후 현판을 살펴보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경제와 과학기술 진흥 등에 관한 현안을 대통령 자문에 응하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경제과학심의회의(이하 경과심) 설치를 제안합니다.” 1962년 11월 5일 월요일.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이날 오전에 열린 최고회의 회의에서 헌법개정안을 확정한 후 대통령 자문기구 설치를 제안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제안이었다.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새로운 헌법기구 설치를 당시 최고 권력자가 직접 제안한 일은 유례가 없었다. 제안은 과학기술에 관한 첫 대통령 자문기구 등장의 신호탄이었다.

최고위원들은 박 의장의 제안을 만장일치로 긴급 가결했다. 최고회의는 이날 오후 제5차 헌법개정안을 공고했다. 헌법개정안은 그해 12월 17일 국민투표로 확정했다.(박정희 의장은 이듬해 실시한 1963년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으며, 12월 17일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정부는 제5차 개정 헌법에 과학진흥에 관한 내용을 규정했다. 정부 수립 이후 최초였다. 헌법 제118조 1항에 '국민경제의 발전과 이를 위한 과학진흥에 관련되는 중요한 정책 수립에 관해 국무회의 심의에 앞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해 경과심을 둔다'고 규정했다. 제118조 2항에는 '경과심은 대통령이 주재한다'고 했고, 제118조 제3항에 '경과심의 조직, 직무 범위 등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정했다.

그해 12월 20일. 최고회의는 이날 오전에 회의를 열고 헌법 개정에 따른 정부 조직 개편과 대통령 자문기구인 경과심 설치를 논의할 정부기구개편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특별위원장직은 조시형 최고위원이 맡았다. 위원으로는 박원빈·길재호·김재춘·오정근·옥창호·홍종철·오치성 최고위원을 임명했다.

특별위원회는 기존 정부 조직을 통합 축소하고 기관별 직급과 인원 등을 재조정하는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특별위원회는 1963년 12월 4일 그동안 마련한 정부조직법개정법률안과 경과심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제안자는 조시형 위원장이었다. 국회는 이날 제10회 제134차 본회의를 열고 정부가 제출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바뀐 정부조직법에 따라 부총리 1인을 두며, 경제기획원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토록 했다.

국회는 이어 대통령 직속기구인 경과심법안도 정부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경과심법의 주요 내용은 대통령이 회의 의장을 맡고 국민경제 발전과 이를 위한 과학진흥에 관련한 중요한 정책 수립에 관해 대통령 자문에 응한다고 정했다. 대통령은 또 경제과학에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상임위원으로 임명 또는 위촉할 수 있다. 의장은 필요한 경우 행정 부처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장관 또는 관계자를 회의에 출석하게 해서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경과심의 행정 처리를 위해 사무국을 두고, 사무국장은 1급으로 대통령이 임명키로 했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의 경과심법안을 그해 12월 14일 공포하고, 12월 1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1964년 2월 1일. 경과심은 이날부터 경제기획원 건물 5층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최두선 당시 총리는 이날 오전 11시 중앙청 총리실에서 대통령을 대신해 사무국장인 김정무씨(예비역 육군준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정부는 이어 2월 13일 경과심 상임위원으로 박동묘 전 국가재건최고회의 고문과 이정환 전 한국은행 총재, 신현확 전 부흥부 장관, 박충훈 전 상공부 장관, 최규남 전 문교부 장관 등 5명을 임명했다. 또 송대순 상공회의소 의장과 남궁련 극동해운 사장을 비상임 위촉위원으로 발령했다. 이들은 장관급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3월 19일 경과심 현판식에 참석했다. 이어 사무국에서 경제와 과학기술 진흥에 관한 업무를 보고받고 상임위원들과 환담했다. 5월 28일 차윤희씨를 경과심 상임위원으로 임명했고, 6월 19일 주요한 전 상공부 장관을 상임위원으로 임명했다. 이후에도 각계를 대표하는 저명인사들을 상임위원으로 임명했다. 이들은 경제나 과학 학식과 경험이 풍부했고, 관료사회에서도 존경받는 인사였다.

경과심을 바라보는 국내외 관심은 높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그해 2월 19일 경과심 상임위원들을 초청, 간담회를 열었다. 일본경제인사절단은 10월 30일 경과심을 방문해 상임위원들과 만나 양국 간 경제 협력 방안을 협의했다. 1965년 1월 28일 주한 미국원조기관인 유솜(USOM) 처장이 극히 이례적으로 경과심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와 과학기술정책 수립에 상임위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현안이 있을 때마다 경과심 회의를 소집해 의견을 들었다. 경부고속도로 계획을 수립할 때도 심의회의 위원들의 의견을 들었다. 경과심은 과학기술 진흥에 관한 조언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종합발전대책, 산업구조고도화 대책 같은 거시경제 대책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 상임위원들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상임위원은 경제와 과학기술 전반에 관한 주요 정책을 해당 부처가 국무회의에 상정하기 전에 검토, 대통령 자문에 응했다. 이를 위해 상임위원은 경제와 상공, 재정환율, 건설, 농업, 과학기술 등으로 업무를 나눠 심도 있게 검토했다. 상임위원들은 정부 정책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도 직언을 원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초청교수 생활을 끝내고 1968년 7월에 귀국한 남덕우 서강대 교수도 8월부터 1년 이상 상임위원으로 일했다.

남덕우 전 총리는 회고록('경제개발의 길목에서')에 다음과 같이 썼다. “귀국한 다음 달부터 상임위원으로 일했다. 이듬해 10월 재무부 장관에 발탁됐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내게 임명장을 준 뒤 '남 교수, 그동안 정부 하는 일에 비판을 많이 하던데 이제 맛 좀 봐'라고 했다.” 남덕우 전 총리는 상임위원 시절 정부에 쓴소리를 많이 했다.

정부는 1968년 12월 경과심 기능 강화를 위해 부의장직을 신설하고 정일권 당시 총리를 부의장으로 임명했다. 당시 경과심 사무국 총무과에서 근무한 권선씨는 회고록('마음의 꽃')에서 “박 대통령은 경과심에서 자주 회의를 했다. 회의를 하다 점심시간이 되면 구내 식당에서 장터국수를 시켜 참석한 장관, 위원들과 함께 먹었다. 축산 진흥을 논의할 때는 칼국수를 먹었다. 간혹 특별식이라면서 명동에 있는 한일관에서 비빔밥을 주문해 먹었다”고 기억했다.

과학기술 정책 입안의 게이트 키핑 역할을 한 경과심은 1994년 김영삼 정부 들어와 폐지됐다. 김영삼 정부는 9월 13일 경과심법 폐지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국회는 12월 17일 오전 10시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이 폐지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황낙주 국회의장=의사 일정 제13항 경과심법 폐지법률안을 상정합니다. 행정경제위원회 조용직 의원 나오셔서 심사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용직 의원이 발언대로 나와 심사 내용을 보고했다.

◇조용직 의원=경과심법 폐지법률안은 지난 9월 13일 정부가 제출해 행정경제위원회로 넘어왔습니다. 그동안 경과심은 대통령 자문기관으로 운영했으나 1981년 이후부터는 사실상 운영이 유명무실해 그 근거법을 폐지하자는 것입니다. 이 법률안을 행정경제위원회에서 정부 제안설명과 전문위원 검토보고를 듣고 정부 원안대로 의결한 바 있습니다.

◇황낙주 국회의장=경과심법 폐지법안에 대해 이의 있습니까?

◇의원들=(다수) 이의 없습니다.

◇황낙주 의장=가결했음을 선포합니다.

정부는 이듬해인 1995년 1월 5일 경과심법 폐지법률안을 공포했다. 이에 따라 경과심은 발족 30여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경과심은 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역대 정부는 기구 형태와 업무 내용은 달라도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자문기구를 설치해 운영했다. 노태우 정부는 1989년 6월 5일부터 1990년 12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운영했다. 이를 본 행정개혁위원회(위원장 신현확)가 상설 자문기구 설치를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정부는 1991년 국가과학자문회의법을 제정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국가과학자문회의법을 개정, 대통령이 의장직을 맡도록 자문회의 위상을 강화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6월 9일 과학기술진흥책은 물론 교육과 인재정책에 대한 자문도 할 수 있게 자문회의법을 개정하고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로 확대 개편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9월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법을 개정하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로 개편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4월 17일 과학기술 자문과 심의 기능을 통합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로 개편했다.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배분과 정책심의 기구인 과학기술심의회를 폐지하고 대신 기능을 통합한 것이다.

현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의장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장관급 부의장직은 민간위원인 염한웅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가 맡고 있다. 간사는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다. 국가과학자문회의는 전원회의와 자문회의 심의회의로 구분, 운영된다. 산하에 과학기술기반소위, 과학기술혁신소위, 과학기술사회소위 등 3개 소위원회와 운영을 돕는 지원단을 두고 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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