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제약·바이오 역대급 M&A, 옥석 가리기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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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분기 제약·바이오 업계 인수합병(M&A) 건수가 작년 절반에 이를 정도로 뜨거웠다. 동물용 의약품, 소프트웨어(SW) 개발, 미용 등 신사업 진출 소식도 활발했다. 시장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지만 이면에는 전반적인 시장침체가 장기화되며 생존전략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의정갈등, 비상계엄 등 각종 혼란과 고환율, 미국 관세 정책에 따른 투자 위축이 M&A·신사업 진출 등을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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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1분기에만 6건…역대 최대

지난해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시장 M&A는 총 14건을 기록, 2020년 3건과 비교해 3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올해는 1분기에만 6건의 M&A가 일어나며 작년 전체 절반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M&A 신호탄을 날린 곳은 HLB생명과학으로 의료용 소재 기업 티니코 인수다. 티니코는 니티놀(니켈과 티타늄 합성 소재) 초탄성 소재 제조 기술을 보유했다. 이번 인수로 기존 주사기 중심 의료기기 사업을 척추삽입 임플란트, 무침 약물 전달기 등 정형외과 의료용 제품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어 2월에는 GC녹십자웰빙이 에스테틱 기업 이니바이오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을 취득했다. 이니바이오는 보툴리눔 톡신 제제 사업을 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 승인이 가능한 GMP 생산시설을 보유했다.

3월에는 4건의 M&A가 진행됐다. 신약개발 기업인 큐라클은 원료의약품 개발·수입·유통 기업인 대성팜텍을 5월14일까지 흡수합병한다. 신라젠 역시 수액제제를 주력으로 하는 우성제약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큐라클과 신라젠은 해당 분야 탄탄한 매출을 자랑하는 기업을 인수함에 따라 신약개발에 투입할 자금 확보가 용이해졌다.

동구바이오와 HLB그룹은 기존 사업 경쟁력 확보와 신사업 진출을 위해 M&A를 활용했다. 동구바이오제약은 국내 피부과 처방약 1위인 만큼 필러와 재생의료 기술을 보유한 아름메딕스를 인수해 전문분야를 강화한다. HLB그룹은 국내 유일 펩타이드 GMP 인증 공장을 보유한 애니젠을 인수, 추후 진출할 비만약 개발 및 생산 거점을 확보하게 됐다.

◇신사업 진출 활발…신성장 동력 발굴 총력

연초 제약·바이오 업계 주주총회에선 사업목적 추가 안건이 다수 의결됐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인 이엔셀은 '인공지능(AI) SW 개발 및 서비스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했다. CDMO와 치료제 개발 과정 효율을 높이고, AI 기반 빅데이터 분석으로 세포유전자치료제(CGT) 제조 공정을 개선하는 게 목적이다.

신약개발 업체인 압타머사이언스는 기술이전, 의약품 비임상 및 임상시험 분석 서비스, 건강기능식품·화장품 도·소매·수출입업 등 8개 항목을 사업 목적에 추가했다. 유유제약은 동물용 의약품 등의 제조·판매업을, 안국약품도 사료 제조 및 수입업을 신사업으로 의결했다. 미코바이오메드는 더바이오메드로 사명 변경과 함께 동물의약품 제조 및 도소매업, 건강기능식품 일반 판매업을 신규 사업으로 추가했고, 이수앱지스는 부동산 매매, 임대 및 개발업, 국내외 투자사업 등을 사업목적에 신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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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구조 개선 목적…옥석 가리기 가속

전문가들은 연 초부터 활발한 M&A, 신사업 추진이 표면적으론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경기침체' 국면의 전형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작년부터 글로벌 경기침체와 의정갈등, 비상계엄 등이 이어지며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됐다. 시장에 자본이 막히면서 R&D 자금이 부족해지고, 버티기 힘든 기업들이 시장 매물로 나온다는 것이다.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제약·바이오 기업은 갈수록 늘고 있다. 경기침체 국면에서 몸값을 낮춰서라도 팔려는 곳이 많아지면서 올해 M&A 건수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고 있어 실제 성사되는 사례가 얼마나 늘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보영 디자인바이제이 대표는 “스타트업이 기술이전 단계까지 가기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기에 결국 기업공개와 M&A가 유일한 성공전략”이라며 “현재 IPO 시장이 침체되면서 결국 M&A 밖에 답이 없는데, 매물이 넘치다보니 몸값을 최대 3분의 1 수준까지 낮춰 엑시트하려는 기업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신사업 진출 역시 활발하지만 M&A와 마찬가지로 R&D 등 내부 역량 강화보다는 경기침체 속에서 재무구조 개선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투자나 상장유지 요건 충족 등을 위해 단기간에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선 M&A 혹은 새로운 사업 추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압타머사이언스는 2020년 기술특례 상장했지만 올해부터 매출 기준 상장폐지 요건을 적용받는다. 올해 매출 30억원을 넘지 못하면 상장폐지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매출 발생을 위해 건기식, 기술이전 등 사업다각화가 필수인 셈이다.

황주리 한국바이오협회 본부장은 “지난해에는 오리온 등 타 산업군에서 제약·바이오 시장 진출이 활발했지만 올해는 큰 기업들이 보수적으로 접근한데다 M&A 매물로 나온 기업 밸류가 낮다고 판단, 공급 대비 수요가 적다”면서 “바이오붐을 타고 창업했던 많은 기업이 올해를 기점으로 옥석 가리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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