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가 세계 최초 경구형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약 '오포글리프론'의 임상 3상 시험에 성공하면서 비만치료제 시장이 '주사에서 알약'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경쟁사인 노보 노디스크도 발 빠르게 경구용 비만치료제 승인 신청에 나섰다. 국내 기업들도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라이릴리는 지난 17일(현지시간) 경구용 당뇨·비만 치료제로 개발 중인 '오포글리프론' 임상 3상 시험 결과, 36㎎ 용량 약을 하루 한 번 먹은 참여자들이 9개월 동안 평균 체중 7.3㎏을 감량했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노보 노디스크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리벨서스) 비만치료제 승인 신청을 공식적으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약물은 현재 당뇨병 치료제로 쓰이는 세마글루타이드의 고용량 버전으로, 지난해 임상시험에서 64주간 체중의 약 15%를 감량하는 성과를 보였다.
노보 노디스크는 당초 승인 신청을 미뤘지만, 경구용 GLP-1 경쟁이 본격화되자 전략적으로 신청 시점을 조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는 해당 약물이 오포글리프론과 함께 경구용 비만치료제 시장을 선도할 핵심 후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세계가 경쟁하는 GLP-1 계열 약물은 식욕을 억제하고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당뇨와 비만치료에 동시에 효과를 보인다. 이 계열 대표 약물인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 '오젬픽'과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 '젭바운드'는 모두 주사제로 개발돼 글로벌 비만약 시장을 주도해왔다.
일라이릴리의 오포글리프론은 식사나 물 섭취 제한 없이 복용 가능하다. 하루 한 알만 복용해도 된다. 반면 노보 노디스크의 리벨서스는 아침 식사 30분전 복용해야 하는 제한이 있다.

국내 제약사도 '경구형'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한미약품, 대웅제약, 종근당 등이 GLP-1 유사체 개발에 뛰어들었다.
한미약품은 H.O.P(Hanmi Obesity Pipeline) 프로젝트를 통해 경구용 비만치료제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GLP-1/GIP '경구용 이중 작용제' 신약 물질을 발굴하고 국내 특허 출원을 마쳤다. 영장류 효력 시험을 포함한 추가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종근당은 해외 파트너와 GLP-1 유사체 구조 개량과 흡수율 개선에 초점을 맞춘 경구용 비만치료제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삼천당제약은 주사제 약물을 경구용으로 변경하는 자사 독자기술 S-PASS 기반 'SCD0506'을 개발 중이며, 2027년 비만치료제로 허가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디앤디파마텍은 펩타이드 계열 의약품의 경구 흡수율을 높이는 자사 기술 '오랄링크'를 미국 멧세라에 수출해 펩타이드 기반 경구용 비만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임상 1상이 진행 중이다. 일동제약은 저분자 화합물 기반 경구용 신약 'ID110521156'를 연구 중이고, 디엑스앤브이엑스(DXVX)는 GLP-1RA 경구용 비만치료제 관련 신규 물질 특허를 출원했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오포글리프론은 펩타이드 기반 의약품보다 합성과 생산이 쉬운 저분자 의약품으로 대량 생산에 용이하다”면서 “펩타이드를 기반으로 개발하는 후발주자들은 경구제형 흡수율이 중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혜영 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