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오 산업 활성화를 위해 병원의 주체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치료제, 의료기기 수요자에서 벗어나 혁신 치료제 공급자로 참여해 시장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한병원협회는 10일 서울 강남구 파르나스 호텔에서 '바이오산업, 병원으로 들어오다'를 주제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신약 개발에 있어 병원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김건수 큐로셀 대표는 “기존에는 병원이 의료기술과 제품을 소비하고 환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에 그쳤다”면서 “해외에서는 세포·유전자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병원이 기술 창출 주체로 활동한다”고 설명했다. 항체와 유효물질 선별 과정에서 병원이 속도를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키메릭 항원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로 승인받은 노바티스의 킴리아가 펜실베니아 의대 연구팀 연구에서 시작됐다. 큐로셀은 삼성서울병원에 200평 규모 임상의약품 생산시설을 두고 협력하고 있다. 환자 면역세포를 추출해 유전자 조작, 배양 등을 거쳐 치료제로 다시 환자에게 투여된다. 병원이 인체 유래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임상·예측에도 병원 역할은 두드러지는 추세다. 전상렬 MBD 의료기기본부장은 “인공지능(AI)과 바이오 데이터를 더하면 보다 정확한 항암제 효능 예측이 가능하다”면서 “이 과정에서 병원이 치료뿐만 아니라 각종 플랫폼을 개발하는 주체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미국 엠디엠더슨암센터처럼 치료제 개발에 적극적인 병원으로 도약하기엔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전 본부장은 “각 병원이 많은 데이터를 보유했음에도 포맷이 모두 달라 AI 구현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데이터를 표준화해서 하나로 모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병원의 보수적 문화도 개선사항이다. 김진오 한국로봇산업협회장은 병원이 수술로봇을 개발하려다가 중단된 사례들을 지적했다. 사업이 한 번 실패하면 그 책임에 대한 부담이 존재하니,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도현 에임드바이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병원 구성원도 기술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산업 융합 속도를 앞당길 수 있다”면서 “한국은 환자 진료에만 집중하는 분위기다 보니 기술 역량이 상대적으로 뒤쳐진다”고 말했다.
이번 콘퍼런스는 대한병원협회 국제학술대회 'KHC 2025' 일환으로 열렸다. 병원협회는 11일까지 '혼돈의 한국의료, 새 길을 찾다'를 주제로 지속 가능한 의료전달체계, 전공의 없는 대학병원의 미래, 진료지원간호사(PA) 제도화 등을 논의한다.
송윤섭 기자 sy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