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155〉꿈의 과학기술축제 대전엑스포93 기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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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대통령이 1991년 4월 12일 대전엑스포93 기공식에 참석, 오명 위원장 등 관계자들과 발파 스위치를 누르고 있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께서 입장하십니다.”

1991년 4월 12일 오후 3시. 대전엑스포93 회장(會場) 기공식이 이날 대전시 대덕연구단지 도룡지구 현지에서 열렸다. 기공식은 국방부 군악대의 팡파르가 힘차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노태우 대통령이 입장하면서 시작했다.

기공식에는 노태우 대통령과 자크 솔롤랑 국제박람회기구(BIE) 의장, 오명 대전세계엑스포조직위원장, 최각규 부총리, 나웅배 민주자유당 정책위의장, 안응모 내무부 장관, 이봉서 상공부 장관, 이어령 문화부 장관, 이진설 건설부 장관, 주한외교사절, 홍진기 대전시장, 과학기술계 인사, 시민, 학생 등 2000여명이 참석했다.

“지금부터 기공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기공식은 국민의례에 이어 오명 위원장이 단상으로 나와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했다.

대전엑스포93 개최의 의미는 각별했다. 한국은 구한 말인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엑스포에 처음 도자기, 돗자리, 모시, 부채, 활, 갑옷, 가마 등을 8간 기와집 전시관에 출품했다. 이후 100년 만에 개발도상국으로는 최초로 꿈의 과학축제를 대전에서 개최한 것이다.

대전엑스포의 주제는 '새로운 도전의 길'이고, 부제로 '전통기술과 현대과학의 조화'와 '자원의 효율적인 이용과 재활용'을 선택했다. 모두 미래를 내다본 주제와 부제였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날 치사를 통해 “이제 우리는 신흥산업국가로부터 대망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문턱에 섰다”면서 “대전엑스포는 과학기술 진흥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 선진 산업사회로 뛰어오를 도약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가 선진국의 높은 벽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은 바로 과학기술일 수밖에 없다”면서 “대전엑스포는 우리 국민의 가슴에 창조의 불길을 지펴서 새로운 도약을 이룩할 결의를 다지는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는 1988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인류평화 축제인 88서울올림픽을 치른 뒤 경제 올림픽이자 과학기술 올림픽이라는 대전엑스포를 개최하게 된 것은 참으로 뜻 깊은 일”이라면서 “대전엑스포는 우리가 더 넓은 세계로,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관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솔 롤랑 BIE 의장은 이에 앞서 축사를 통해 “한국은 자신을 개발도상국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우리는 선진 개발도상국으로 표현하고 싶다”면서 “한국 정부와 국민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 오늘날과 같은 활력 있는 국가를 이룩하기 위해 보여 준 용기·희생·지성을 대전엑스포와 같은 평화적이고 새로운 도약을 실현하는 데 다시 한번 유감없이 발휘해 달라”고 당부했다.

기공식 하이라이트는 노 대통령을 비롯한 BIE 의장, 오명 위원장, 주민 대표 등 12명의 기공발파였다. 발파 스위치를 누르자 화려한 불꽃과 오색 축하 연기가 파란 하늘을 수 놓았다.

오명 당시 조직위원장의 회고.

“나는 발파 스위치를 누르면서 다시 한번 우리 민족의 대역사가 될 대전 세계엑스포가 마무리될 때까지 아무런 사고없이 끝나게 해 달라고 빌었다” 밝혔다.

발파에 이어 250여명으로 구성한 대전시 연합합창단이 '희망의 나라로'를 힘차게 합창했다.

이어 옛 어른들이 터 닦기를 할 때 공사의 안녕과 성공을 기원하며 진행한 마당밟기를 국립국악원 주도로 시작했다. 흥겨운 농악을 곁들인 마당밟기에는 초청 인사들과 지역 주민, 조직위 직원 모두 한마음으로 마당을 힘차게 밟으며 대전엑스포의 성공을 기원했다.

마지막으로 대전엑스포 마스코트인 꿈돌이가 등장해서 인사말을 했다.

“안녕하세요. 꿈돌이예요. 기공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기공식이 끝난 뒤 내빈들을 위한 경축연회가 열렸다. 경축연회는 한국 전통을 살려 한국식단으로 준비했다.

이날 연회에서는 엑스포식 건배가 처음 등장했다. 보통 연회에서는 '건배' '위하여' 등을 외쳤다. 그러나 이날 오명 위원장은 건배를 제의하면서 “엑스포”라고 외쳤다. 이후 조직위 임직원들은 크고 작은 술자리에서 예외없이 “엑스포”를 소리 높여 외쳤다.

엑스포 기공식까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먼저 개최 지역을 놓고 줄다리기를 했다.

당시 개최 후보지 1순위는 경기 안산(반월)이었다. 대덕연구단지는 2순위였다.

한기익 당시 과학기술처 대덕연구단지관리소장의 증언.

“대전엑스포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대덕연구단지로 유치했다. 과학기술처는 대덕에 엑스포를 유치할 경우 연구단지 기반 시설과 연구 환경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데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총리실에 전국 중심권에 있는 대덕이 학생 관람이 쉽고 배후에 연구단지가 있어서 산업과 과학기술이 연계, 대전엑스포의 성공 확률이 높다는 주장을 강력히 했다. 1988년 5월 한승수 상공부 장관이 대덕을 방문했다. 나는 관리소장실에서 이봉학 대전시장과 충남국토관리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대덕 유치의 당위성을 강력히 건의했다. 얼마 후 국무총리가 대덕을 방문해 한국과학기술원 등 배후 환경에 감탄하시고 대덕을 엑스포 개최지로 결정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대전엑스포의 성공적 개최로 연구단지의 오랜 숙원이던 순환도로 8차로 포장과 북대전 인터체인지(IC) 건설 등으로 연구기관 입주를 앞당기는 계기로 작용했다.”

대전엑스포는 국가적인 행사이고 노태우 대통령 관심사여서 당연히 대통령이 참석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대통령이 아닌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키로 결정했다.

오명 당시 조직위원장의 회고.

“기공식에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국회 엑스포특위 이동진 위원장이 급히 나를 찾아와 충고했다. '대통령이 기공식에 참석하느냐 안 하느냐는 대전 엑스포 성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으면 앞으로 모든 기관이 소극적으로 변할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대통령을 모셔야 한다'라고 했다.”(대전 세계엑스포 그 감동과 환희)

오 위원장은 담당 비서실의 협조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개인 인연을 동원했다. 당시 대통령 정책담당 보좌관인 김학준 박사를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김 보좌관은 “역사적인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는다니 말이 되느냐”며 노태우 대통령에게 기공식 참석을 건의했다. 노 대통령은 김 보좌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기공식에 참석했다.

오명 위원장의 회고록 증언.

“기공식장에서 나는 노 대통령께 강한 어조로 '오늘 대통령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대전 엑스포 준비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적극 도와주시지 않으면 엑스포 준비는 불가능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대전엑스포 회장은 총 공사비 1505억원을 들여 27만3000여평의 부지에 전시관을 건립하는 공사였다.

회장은 과학공원 구역과 국제전시 구역으로 구분하고 과학공원 구역에는 대규모 영구 주제별 독립관, 국제전시 구역에는 국제관·임시국내관·공연장 등을 건설키로 했다.

14개 영구독립관은 정부관, 주제관, 대전시관, 정보통신관, 전자컴퓨터관, 도시관, 우주항공관, 창의관, 자동차관, 전기에너지관, 자원소재관, 지구관, 식량자원관, 교통관, 생명공학관 등 신기술관이었다.

임시독립관에는 주거환경관, 항공산업관, 화폐문화관, 어린이생활관, 섬유산업관, 환경보전관, 자원활용관, 한민족관, 중견기업관, 중소기업공동관 등을 만들기로 했다.

또 엑스포 기간에 열리는 50여종 1000여 차례의 공연 등 문화행사를 위해 3000석 대규모 공연장과 1000명에서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중간공연장, 놀이마당 등도 조성키로 했다.

조직위는 세계 60여개국 20여개 국제단체를 유치키로 하고 165개국 59개 국제단체에 참가 초청장을 보냈다.

조직위 측은 대전엑스포 기간에 외국인 30만명을 포함해 모두 10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박람회장을 찾을 것으로 보고 교통난 해소를 위해 고속도로·국도 등 도로 확충과 헬리콥터장 운영 등 교통대책, 숙박시설 확충을 서둘렀다.

조직위 측은 대전엑스포를 통해 3조60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21만7000여명에 이르는 고용효과 등을 거둘 것으로 기대했다.

대전엑스포는 2년 후인 1993년 8월 7일부터 11월 7일까지 93일 동안 개최했다.

대전엑스포는 과학기술의 현주소와 미래상을 제시한 '새로운 도약의 길'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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