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율주행 플랫폼을 개발하는 A사는 최근 인력을 절반가량 감축했다.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도 잇따른 투자 거절로 결국 구조조정에 나섰다. A사 대표는 “기술력을 인정받았지만, 현재 벤처투자 환경에서는 투자 받기가 매우 어렵다”고 토로했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 '혹한기'가 2025년에도 이어지며 장기화의 늪에 빠졌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는 지난해보다 크게 줄며, 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업계는 침체한 투자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정책 개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7일 벤처투자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 대상 투자 건수는 총 24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감소했다. 같은 기간 투자 금액은 1조2363억원으로, 전년 대비 4% 줄었다.
투자 감소는 대부분의 사업 단계에서 나타났다. 특히 초기 단계(시드시리즈 A) 투자 건수는 181건으로 전년 대비 29% 줄었다. 후기 단계(시리즈 C~프리IPO)의 경우 투자 건수는 20건으로 43% 늘었지만, 투자 금액은 2290억원으로 21% 감소했다. 유일하게 중기 단계(시리즈 B~C)만이 6024억원으로 전년 대비 13% 증가하며 선방했다.
경기 위축은 벤처기업 체감 지수에도 반영됐다. 벤처기업협회가 발표한 '2025년 1분기 벤처기업 경기실사지수(BSI)'는 78.6으로, 전 분기(85.0)보다 6.4포인트(P) 하락했다. 처음으로 80선이 무너지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BSI는 100 이상이면 경기 호전, 미만이면 경기 악화를 의미한다.
체감 경기 악화 주요 요인은 '내수 판매 부진'(81.1%)과 '자금 사정 악화'(56.1%)로 나타났다. 특히 자금 사정이 어렵다고 응답한 기업 비율은 전 분기보다 12.7%P 증가해,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반면 실적이 개선됐다고 답한 기업들은 '내수 회복'(73.7%)과 '기술 경쟁력 강화'(23.2%)를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업계는 차기 정부 핵심 과제로 벤처투자 시장 회복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 관세 정책 여파로 글로벌 시장이 위축되면서 향후 대기업들의 벤처 투자 여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 시장이 더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에 따라 정부 차원의 모태펀드 확대 등 공격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벤처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관세 압박은 글로벌 시장을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게 할 것이며, 이는 대기업들의 투자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현재도 벤처투자 혹한기가 가속화하는 상황으로, 정부가 모험시장 내 투자를 확대해 벤처 생태계 자금 경색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윤호 기자 yu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