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발표한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추가 규제 시행이 기업들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뤄질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시행을 맡을 예정이나 국가 안보 차원에서 강화된 규제라 백지화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다. 한국 고대역폭메모리(HBM)도 이번 규제 영향권 내에 들어설 전망이다.
1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2기 행정부와 협의한 후 AI 반도체 및 AI 모델 수출 규제 방안을 담은 수출관리규정(EAR)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는 두 행정부 간 사전 협의가 이뤄졌다는 의미로, 120일간의 의견수렴 이후 발효될 예정이나 큰 변화 없이 시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가 의회심사법(CAR)에 근거해 EAR 개정안 무효화에 나설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국가 안보와 관련한 사안이라 '불승인 공동 결의안' 통과를 위한 다수 의원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번 AI 추가 수출 규제는 동맹국(규제 면제)과 적성국(수출 금지)이 아닌 120여개국에도 AI 반도체 수출 상한선을 정하는 게 핵심이다. 적성국들이 AI 반도체에 접근해왔던 중동, 동남아 등 우회 경로까지 원천 봉쇄하겠다는 바이든 정부 의지가 담겼다.
구체적으로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120여개국을 대상으로 국가의 위험 수준, 수출 통제 능력 등을 검토해 분기별로 누적 수출 상한을 정한다. 수출 상한은 AI 컴퓨팅 '총처리 성능(TPP)' 형태로 할당되며 해당 국가의 기업들은 이를 공유한다.
AI 반도체 수출 규제가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엔비디아, AMD, 인텔 등에는 부정적이다. 엔비디아는 성명을 통해 “새로운 수출 규제는 120일간 시행되지 않지만, 이미 미국의 이익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리더십과 경제를 강화하고 AI와 이외의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유지하는 정책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고 지적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미국 외 시장 매출 비중이 약 56%다. 규제 시행 시 엔비디아는 매출 절반 이상이 발생하는 국가들이 수출 제한 국가에 속해 사업적 제약이 생긴다. AI 반도체용 고성능 메모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생산하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도 이번 규제 영향권 안에 있다. 특히 국내 기업들의 해당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부정적 영향을 피하기 힘들다. 아직 AI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못따라가고 있으나, 향후 공급이 늘어났을 때를 가정하면 엔비디아와 HBM 제조사들의 수익 잠재 성장성이 제약을 받게 된다.
특히 미국이 AI 반도체, AI 모델 수출을 차단하며 고립시키려는 중국에서의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 엔비디아도 연 매출 17%가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중국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중국 AI 산업 시장 규모는 지난해 3566억 위안(약 70조9384억원)으로 추산되며 관련 기업수는 166만개 이상이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국가 안보 차원에서 바이든 정부가 꺼내든 규제에 트럼프 2기 행정부, 의회가 제동을 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예상한다”며 “미국 기업들의 잠재적 시장 규모는 줄어들 수 있으나 핵심은 중국과의 AI 패권 경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