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여개국 수출 상한 지정
중국·러시아 우회 경로 차단 목적
첨단 AI 모델 수출도 규제 포함
미국 정부가 인공지능(AI) 업계 반대에도 수출 규제를 전 세계로 확대하는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중국·러시아 등 적성국의 AI 반도체 접근을 원천 차단하면서 동시에 AI 산업에서의 미국 주도권을 견고히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미국 상무부는 13일(현지시간) 첨단 AI 반도체에 대한 기존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우회 수출을 차단하기 위한 수출관리규정(EAR)을 개정해 발표했다. 120일간의 의견 수렴 기간을 거친 뒤 발효될 예정이다.
규제는 전 세계 국가를 3개 등급으로 나눠 AI 개발에 필요한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는 것이 골자다.
1등급 국가는 미국 동맹국으로 한국, 호주, 벨기에,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스페인, 스웨덴, 대만, 영국 등 18개국이 속한다. 이들은 규제 면제 국가로 현재와 동일하게 AI 반도체 수출 통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핵심은 2등급 국가로 싱가포르,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120여개 국가다. 이들은 국가별 할당량에 따라 AI 반도체를 구매할 수 있게 된다.
3등급 국가는 러시아, 중국, 이란, 쿠바, 북한 등 미국이 무기 금수국으로 지정한 22개국이다. 이들 국가에는 AI 반도체를 수출하려면 현재와 동일하게 미국 상무부 허가를 받아야 하나, 허가 신청 시 거부 추정 원칙으로 심사된다.
이번 추가 수출은 적성국들이 다른 국가를 통해 AI 반도체를 우회 확보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기존에는 동남아, 중동 국가를 거쳐 중국, 러시아 등에 AI 반도체가 흘러 들어갔다고 알려졌는데 2등급 국가에 수출을 제한해 이를 원천 봉쇄하려는 것이다.
또한 AI 반도체 기반 데이터센터 구축에도 제한을 뒀다. 미국과 1·2등급 국가는 보편적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인증을 받아 3등급 국가를 제외한 어느 곳에든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수 있으나 비중을 규정했다. 기업은 AI 컴퓨팅 용량의 75% 이상(미국 기업은 50% 이상)을 미국 또는 자국 내에 둬야 한다. 1등급 국가에는 25%까지, 2등급 국가에는 7%까지 허용된다.
또한 미국은 AI 반도체를 활용해 훈련된 첨단 AI 모델까지 수출통제 대상에 추가했다. 구체적으로 1경번 이상의 계산 동작을 통해 훈련되는 AI 모델이다. 일반에 공개된 AI 모델, 가장 첨단의 공개 모델보다 성능이 낮은 구형 모델은 통제 대상이 아니다. 한국을 비롯한 1등급 국가는 해당 수출 통제에서도 면제된다.
이날 발표된 추가 규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시행될 예정으로 일부 내용이 변경될 수 있다. AI 반도체 기업들은 의견 수렴 기간 동안 규제 수위를 낮춰 줄 것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규제 시행 수위는 불분명하나,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 대중국 제재 정책에 대한 견해는 공유하고 있어 큰 틀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이 면제 국가에 포함돼 기업, 기관, 개인의 미국 첨단 AI 칩·모델 수입에는 영향이 없을 예정”이라며 “정부는 업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앞으로도 미국과 반도체 공급망 안정 및 수출통제 관련 협력을 긴밀히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