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산업을 설명할 때 ‘메모리는 강하지만 시스템반도체는 약하다’라는 설명이 늘 따라다닌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을 바꿔주는 품목이 나타났다. 그것도 시스템반도체 가운데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다.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0년 AP제품에서 10억7400만달러 매출을 올려 시장점유율 62.6%를 달성했다. 독보적 1위다. 스트레티지애널리틱스가 지난 8월 발표한 보고서에는 올해 삼성전자 AP 점유율은 단독모델 가운데 66.5%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기흥에 위치한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우리나라 시스템반도체 역사를 새로 써가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만난 AP개발 관련 인력들은 자신감은 물론 자부심이 충만했다. AP는 개발팀뿐만 아니라 기획, SW 개발, 플랫폼 개발, 공정기술이 혼연일체가 돼야 명품이 나온다. 박성호 AP개발팀장(전무) 지휘로 수십개 과정을 밟아간다. 하나의 AP가 나오기까지 1년에서 1년 6개월이 걸린다.
각 파트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베테랑인 이들 9명의 수석엔지니어들은 “삼성의 AP는 십수년간 노력해온 결과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성호 전무는 삼성전자 AP 경쟁력 근원을 90년대 말 서버 CPU로 사용됐던 알파칩 개발에서 찾는다. 15년도 더 된 이야기다. 그는 “사업에는 실패했지만, 삼성전자 기술력이 한 단계 점프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실패했지만 삼성전자는 프로세서를 포기하지 않았다. 절치부심해 지난 2000년 PDA용 AP인 2440을 AP제품으로는 처음으로 출시했다. 당시에는 매뉴얼조차 없을 정도로 허술했다. 경쟁사는 고객에게 칩 관련 매뉴얼로 12권 책을 가져다줬지만, 삼성은 매뉴얼 대신 상세히 설명해줄 사람을 보냈다. 이 사람을 가리켜 ‘인텔리전트 매뉴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2006년에는 처음으로 휴대폰에 들어가는 AP를 만들었다. 스마트폰 붐이 일어나면서 삼성전자의 AP는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10여년이 흐르며 기획부터 고객 지원에 이르기까지, 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협업도 자리를 잡아갔다.
김태진 수석(AP개발팀, 설계담당)은 “한국은 메모리뿐만 아니라 이제 시스템반도체 역량도 충분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10년 이상 손익 따지지 않고 지원을 한다면 어떤 분야든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제조강국인 점도 큰 힘이 된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모든 AP 개발사가 미국 회사다. 미국은 프로세서에 기술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한국은 제조 강점을 활용할 수 있다.
김태용 수석(소프트웨어 솔루션 개발팀)은 “삼성은 통합(인티그레이션)과 제조가 강하다”며 “제조 역량을 갖추면 개발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강희성 수석(테크놀로지 디벨롭먼트 팀)도 AP에 특화된 제조를 강조하고 협업의 성과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서기 위해 불철주야 개발에 매달렸던 날은 셀 수도 없다. 진저브레드(안드로이드 OS가운데 하나)용 세계 첫 AP를 개발하던 시기에는 밤샘작업이 일쑤였다. 구글이 새벽에 AP 리뷰(평가) 결과를 보내면 눈을 비비면서도 바로 문제를 해결했다. 세계 최초 제품을 낸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선경일 수석(소프트웨어솔루션개발팀)은 “과거에는 따라가는 입장이었다면 이제 세계를 리드하게 됐다”면서 “그 자부심이 우리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1위에 올라서니 대접도 달라졌다. 이상조 수석(커스터머서비스엔지니어링팀)은 “고객들이 단순 칩 벤더가 아닌 파트너로 바라본다”고 설명했다.
과거 경쟁사를 따라가자는 목표를 세웠던 이들은 이제 엄연한 1인자가 됐다. 이제 메모리를 넘어 시스템반도체로 1위를 해보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김종인 수석(AP개발팀, 검증 담당)은 1위 고지를 지키는 것이 목표라고도 했다. 이진언 수석(SoC플랫폼개발팀)은 “(삼성 전체에서) D램이 1등이었고 지금은 낸드가 앞서가지만 이제 곧 AP가 1등할 날이 올 것이다”고 강조했다.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m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