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온과 삼성SDI가 북미 설비 투자에 돌입해 관심이 쏠린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로 배터리 장비 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모처럼 규모 있는 발주가 나와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삼성SDI-GM 합작공장 장비 공급사 윤곽…구매의향서 체결
삼성SDI는 GM과 미국 인디애나주 뉴칼라일에 배터리 합작공장을 구축하기 위해 최근 협력사 선정을 마무리했다. 복수 업체와 장비 구매의향서(LOI)를 체결, 공장 구축 사전 준비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배터리 제조 공정 중 가장 앞단에 해당하는 믹싱공정 장비는 제일엠앤에스가 공급할 전망이다. 믹싱공정에서 혼합한 소재를 토대로 배터리 양극과 음극을 제조하는 전극공정 장비는 씨아이에스와 한화모멘텀이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극을 자르고 쌓거나 탭을 접착하는 조립공정 장비는 각각 필에너지와 엠오티가 선정됐다. 배터리에 전기적 특성을 부여하는 활성화공정 장비 공급망에는 원익피앤이와 중국 항커커지가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사공정 장비는 이노메트리가 담당한다.
GM 합작공장 공급망은 '안정성'에 중점을 뒀다는 평가다. 삼성SDI가 GM가 함께 미국에 처음으로 건설하는 배터리 공장인 만큼 기존 삼성SDI 협력사들이 거래선에 포함됐다.
업계에서는 2분기 중 장비 정식 구매주문(PO)이 나올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합작공장은 총 4개의 생산 라인으로 이뤄지는데, 이중 3개 라인 설비를 먼저 주문하고 나머지 1개 라인 투자는 연말에 단행할 전망이다.
장비 구매에는 약 1조원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공장의 초기 생산능력이 연 27기가와트시(GWh)로 통상 해외 배터리 공장 건설에 1GWh당 1000억원 가량이 소요되고 이 중 40~50%를 장비 투자가 차지하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삼성SDI와 GM은 35억달러(약 5조원)를 투자, 배터리 생산 능력이 총 36기가와트시(GWh)인 합작공장을 건설한다. 배터리 양산 목표 시기는 오는 2027년으로, 공장 구축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15조원 수주 따낸 SK온, 장비 발주 시작
SK온은 지난달 일본 닛산과 99.4GWh 규모 계약을 맺으면서 배터리 생산을 위한 장비 발주를 시작했다. 전체 금액이 15조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대형 계약이다.
지난 2023년 11월 스웨덴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와 맺은 공급 계약 이후 약 1년 4개월 만에 이뤄진 대규모 계약으로, 그동안 수주 공백기를 겪었던 SK온 협력사들의 수혜가 가시화됐다.
PO를 받은 장비사들은 속속 계약 사실을 공시하고 있다. 엠플러스는 440억원 규모 조립공정 제조 설비 공급 계약, 하나기술은 290억원 규모 스태킹 장비 공급 계약, 자비스는 77억원 규모 컴퓨터단층촬영(CT) 및 엑스레이 검사장비 공급 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했다. 계약 상대방 정보는 고객사의 영업비밀 요청으로 기재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SK온과의 거래로 추정하고 있다.
이밖에 윤성에프앤씨는 믹싱공정 장비, 피엔티는 전극공정 장비, 우원기술은 조립공정 중 노칭 장비, 원익피앤이와 항커커지는 활성화공정 장비를 각각 공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SK온은 포드와 합작한 블루오벌SK 켄터키 1공장을 활용해 닛산용 배터리를 생산할 방침이다. 전체 16개 생산 라인 중 절반인 8개 라인을 닛산용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으로, 신규 장비도 이곳으로 반입될 예정이다.
켄터키 1공장의 생산능력은 43GWh로 이 중 절반을 닛산용으로 전환하는 만큼 투자 규모는 약 20GWh가 될 예정이다. 이를 기반으로 추산한 투자비용은 약 2조원으로 이 중 절반인 1조원 가량이 장비 구입에 투입될 수 있다. 다만 건설된 공장을 활용해 라인을 전환하는 만큼 투자 금액은 이보다 적어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양사 투자가 본격화하면서 수주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라며 “매출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등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 정현정 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