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발표한 실손보험 개혁안을 두고 정부와 보험업계, 의료계와 소비자간 시각차가 뚜렷하다. 개혁안이 비급여 항목 보장에 강도 높은 제한을 두면서, 해석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정부와 보험업계는 그간 과잉진료와 의료쇼핑 등 부작용을 야기한 실손보험과 비급여 항목을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보험료 상승 등 선량한 소비자에게까지 피해가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의료계와 소비자들은 정부가 제시한 개혁안이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고 의료서비스 질을 하락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결국 보험사만 배불리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비급여 과잉팽창, 필수의료 악화로
이번 개혁안은 과도하게 불어난 비급여 의료비 관리를 강화하고, 실손보험금 비급여 누수를 방지하는 것이 목표다. 정부는 통제되지 않는 비급여가 실손보험과 연계되면서 필수의료 악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 2023년 기준 비급여 항목으로 발생한 의료비용은 20조2000억원으로 전년(17조6000억원) 대비 2조6000억원이나 증가했다. △2019년이 16조6000억원 △2020년 15조6000억원 △2021년은 17조3000억원으로 코로나 시기인 2020년을 제외하면 지속 상승세다.
의료개혁특위는 비급여와 실손보험으로 인한 의료비 증가가 수익에 영향을 미치면서, 비급여 항목이 다수인 진료과로 의사가 쏠리고 있는 것으로 관측했다. 올 상반기 기준 소아과 모집률은 25.9%에 불과했으나 비급여 진료가 비교적 자유로운 정형외과 모집률은 150.7%, 안과는 172.6%에 달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실손보험을 중증환자 중심으로 개편하고 적정한 금액을 보상하는 데 초점을 둔 개혁안을 제시했다. 중증 질병·상해와 비중증 질병·상해 구분으로 보장금액 한도와 자기부담률을 차등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비중증 질병과 상해에 대한 보장한도를 △1년간 1000만원 △통원 일당 20만원 △입원 회당 300만원까지 축소할 계획이다. 기존엔 △1년 5000만원 △통원 20만원으로, 입원엔 회당 한도가 없었다. 또 비중증 환자 자기부담률이 입·통원 각각 50%로 설정됐다. 기존에 입·통원때 30%만 부담하면 됐던 의료비가 20%p 상향되는 셈이다.
특히 실손보험금 누수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 온 도수·체외·증식 등 근골격계 치료비는 비급여 실손보험금 청구가 막힐 전망이다. 의료개혁특위는 도수·체외·증식치료비, 비급여 주사, 비급여 MRI 등을 보험금 미지급 사유 예시로 포함했다. 앞으로 '관리 급여' 항목에 포함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닭 잡는데 소칼' 과도한 개편 지적도
반면 의료계와 소비자들은 이번 개혁안이 지나치게 실손보험 혜택을 제한하는 것에 중점을 둔 일방적 개선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악용될 수 있는 일부 비급여 항목뿐 아니라 전체 비급여 항목에 대한 보장이 대폭 축소되면서 소비자 권익을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개편안이 중증과 비중증만 구분하고 치료별 특성이나 소비자 니즈는 감안하지 않아, 비중증환자 의료비 부담이 크게 증가할 수 있는 구조라는 평가다.
실제 그간 일부 소비자가 마사지처럼 애용하던 도수치료는 비중증, 관리급여로 전환돼 자기부담률이 최대 95%까지 상승할 전망이다. 중증환자가 아니라면 실손에 가입하고 10만원 상당 도수치료를 받았을 때,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기존 3만원에서 9만5000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소비자 혜택이 대폭 축소될 개연이 크다 보니, 실손보험 개혁을 두고 양측 평행선이 지속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토론회 당일에도 반대 의견이 제기됐다. 한 의료계 종사자는 “보험은 최선의 진료를 받기 위해 가입하는 것이지 최소한으로 치료받기 위해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며 “환자가 아파 1인실을 쓰고 싶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남용되는 비급여에 대해선 통제하는 방향성이 옳겠지만, 오남용 우려가 없다면 기존대로 두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개혁안으로 인한 비용 증가가 개인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개혁안의 현실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의료개혁특위는 이날 공개한 개혁 초안에 대해 여론 수렴과 보험업계 의견 청취 및 논의 등을 거쳐 최종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박진혁 기자 s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