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조선군이 왜군을 토벌·격퇴할 때 주무기로 사용한 '진천뢰'의 크기가 밝혀졌다.
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초빙교수는 19일 진천뢰의 크기 구조 등을 고증해 발표했다. 채 교수(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는 신기전과 거북선, 각종 화포 등을 연구 복원한 고화기전문가다.
진천뢰는 폭탄의 점화장치인 주격철을 포탄에 넣어 목표 지점에서 터지도록 설계된 일종의 시한폭탄이다.
진천뢰가 적진에서 터지면 화약의 폭발과 함께 수류탄이 터지듯 마름쇠가 튀어나가며 인명을 살상한다. 진천뢰에는 주격철통이 들어가는데 도화선이 화약에 도달할 때까지 타는 시간을 벌어줘 포탄이 바로 터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해 주는 핵심 기관이다.
1635년 발간된 '화포식언해'에 조선군이 진천뢰는 대완구로 발사하고 비격진천뢰는 중완구를 이용했다고 기록됐다. 그러나 비격진천뢰와 달리 진천뢰는 실물이 남아 있지 않아 진천뢰와 정밀한 크기를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화포식언해'에는 진천뢰가 철로 주조됐고 무게가 113근(67.8㎏), 철 뚜껑이 10냥(375g), 폭발을 지연시키는 주격철통 무게 1근8냥(900g)으로, 화약 5근(3㎏), 살상용 쇳조각인 능철(마름쇠) 30개를 넣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를 감안한 전체 무게는 72㎏에 안팎이다.
채 교수는 진천뢰가 '대완구'에서 발사됐다는 화포식언해 속 기록을 기반으로 크기를 추정했다. 대완구는 대형 포탄을 발사할 때 쓴 조선 시대 대포다. 실물은 남아있지 않으나 세종 때 개발된 총통완구와 제원이 같다. 총통완구에는 33㎝의 포탄이 쓰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채 교수는 이를 근거로 진천뢰의 크기를 33㎝로 특정했다.
또 진천뢰가 대완구 속에서 폭발할 경우 피해가 크기에 안전한 곳에 숨어 긴 점화선을 이용해 발사하거나 주화(신기전)을 이용해 점화·발사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채 교수는 “기록에는 진천뢰가 비격진천뢰보다 무게는 5.6배 더 무거운데다 화약도 5배 더 많이 넣고 능철도 30개를 넣어 폭발력과 살상력이 5배 이상 클 것”이라며 “이는 진천뢰가 왜군을 토벌하고 격퇴하는 데 큰 구실을 한 무기였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진주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임진왜란 당시의 '항병일기'에도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남아있다.
“왜적을 토벌하는 계책으로 진천뢰보다 더 나은 것이 없었다”(1593년 2월9일치), “진천뢰는 효과가 있어 왜적의 간담을 벌써 서늘하게 하니 지극히 기쁘지만, 안동 진영에는 3개뿐인데다 화약이 바닥나 수송할 수가 없다”(1953년 1월16일치)는 내용이 실려 있다.
그는 1694년 편찬된 강화도 지리지 '강도지', 영조 때부터 기록한 '일성록' 등에도 진천뢰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을 들어 임진왜란 때 주요 무기로 진천뢰가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