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최근 전기자동차 충전기 구매 과정에서 입찰 자격을 갖추지 않은 업체를 참여시키고 결국 구매 계약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입찰 자격인 자체 생산시설을 확인하지 않고 업체가 지정한 엉뚱한 곳에서 현장 실사(중간검수)까지 마쳤다. 대중이 널리 사용하는 전기차 충전기 사업에 개발·제조 경험이 없는 비전문 기업을 참여시킴으로써 사고 대응이나 안전 관리 미흡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
한국전력은 이달 초 네 차례에 걸쳐 실시한 전기차 급속충전기(50㎾h급) 구매 입찰에서 D사(낙찰 수량 24개), P사(19개), J사(8개), B사(12개)를 선정했다. 이 가운데 P사를 제외한 3개 낙찰 기업은 충전기 제조기업인 S사와 A사 제품으로 입찰에 참여, 계약을 따냈다. 이들은 계약 전에 필요한 현장 실사를 아예 S사와 A사에서 받아 통과됐다.
한전이 입찰 공고를 내면서 제시한 참가 자격 첫 항에는 `충전기 제작 시설을 갖춘 국내 공장등록증을 보유하고`가 명시돼 있다. 업계는 D, J, B사가 애초에 이 자격도 갖추지 않고 입찰에 참여해 선정된 것은 명백한 규정 위반이라고 봤다.
또 자체 개발이나 제작 경험이 없는 제품을 들여와 설치한다면 앞으로의 기기 고장이나 사고 때 전문 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더해졌다.
한 충전기업체 관계자는 “자격이 안 되는 업체 3곳을 선정해 놓고 한전이 직접 나간 현장실사도 다른 업체에서 받은 것으로 통과됐다면 한전 스스로도 불법을 묵인한 것”이라면서 “급속충전기는 고압 전기시설로 안전과 유지보수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자칫 피해는 전기차 이용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한전은 낙찰 기업이 제출한 공장등록증이 허위가 아니라면 규정상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공장등록증 주소지와 실제 실사 현장이 다른 것은 사전에 확인할 수 있는 사실상의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전 관계자는 “업체들이 공장등록증을 제출했기 때문에 입찰 참여 조건에는 문제될 게 없었다”면서 “기업 영업 활동을 사전에 제한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없는 상태에서 생산 설비뿐만 아니라 납품 검사 설비가 없어서 제품 공급사 현장을 실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는 “전문성 있는 검증을 위한 개선 방법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박태준 전기차/배터리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