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책임자 없는 중기적합업종 선정

 동반성장위원회 2차 중기적합품목 선정을 앞두고 정수기 업계 관계자들이 볼멘소리다. 정수기 시장에 대기업 진입이 차단될 수 있는 상황인 데 정작 이를 반기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한 마디로 관심이 없다.

 동반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안을 만들고 합의가 이뤄지면 해당 산업을 적합업종 지정에서 제외한다. 업종 지정을 앞두고 LED, PC 산업 등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이견이 분분하지만 정수기 업계는 조용하다. 당초 웅진코웨이와 LG전자가 정수기사업을 접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예상됐지만 정작 업체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적합업종 지정 현실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분석에서다.

 현재 정수기 업계는 별 탈 없이 대중소 상생안을 도출하고 있다. 이미 주요 정수기 업체들은 상당량을 국내 중소기업에서 OEM으로 공급받고 있고 필터 등 부품 협력도 비교적 잘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 등 업계 공동 과제에 협력하고 투자, 기술개발 등을 대기업이 지원하자는 데 상호 동의하고 있다.

 의료기기로 분류된 이온정수기도 합의점 도출이 한창이다. 그러나 이온정수기는 전통적으로 전문 중소기업이 시장을 장악해 왔고 새로 뛰어든 LG전자, 동양매직, 위니아만도 모두 관련 매출이 상당히 미미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기적합업종 지정이 생색내기용 정책이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역할 분담이 필요한 산업군도 분명 있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보면 각 분야를 면밀히 관찰하지 않고 다수 업계를 일단 흔들고 보는듯한 광경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정부가 권고를 넘어 강제로 대중기 협의회를 꾸리고 협의 결과를 전 업계 사업자가 동의했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협의회에 참석하지 않은 다수 기업 의견이 달라도 전 업계가 의견 일치를 본 것으로 발표하는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정부가 주선한 협상 테이블에 앉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얼떨떨하다. 협의안을 만들지 못하면 동반위가 직접 산업구조에 칼을 대겠다니, 정부가 휩쓸고 지나간 시장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 것인지 의문이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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