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에 폭염이 올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긴 장마와 많은 강우를 기록했다. 정부는 연초에 여름 예비전력이 400만㎾ 내외가 되는 일종의 전력수급 비상 상황을 예상했다. 실내온도 규제 등 다양한 에너지 사용 규제 도입과 에너지 절약 홍보를 실시했다. 서늘한 여름으로 우려했던 전력수급 불안은 말끔히 해결됐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몇 달 후에도 동절기 전력수요 급증을 대비한 전력수급 안정화 대책을 발표할 것이다.겨울철 건물 실내온도 규제 방안 등도 포함될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향후 수년 동안 이런 현상이 지속적으로 반복될 것이라는 점이다.
시원한 여름이나 따뜻한 겨울이 오면 전력수급은 큰 문제없이 넘길 것이지만, 건물온도 규제 등으로 전력수급 불안과는 상관 없는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보내야만 한다. 혹서와 혹한이 올 경우에는 적정 예비력을 확보하기 위해, 즉 불시 정전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하고 아슬아슬한 줄타기 시책·규제·에너지절약 홍보 등이 모든 언론 지면을 뒤덮을 것이다.
최근 전력수급 불안이 가시화한 원인과 배경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저렴한 전기요금과 요금제도의 후진성으로 인한 지속적 수요 증가, 발전설비 건설 지연에 따른 공급력 부족, 발전사업 허가를 정부가 직접 개입하고 규제하는 전력수급정책의 경직성, 정부 및 한전 주도의 규제적 전력수요관리 방식, 스마트그리드 기술의 적용 한계, 에너지 절약에 대한 소비자 인식 미흡 등 전력산업을 둘러싼 모든 왜곡과 문제점이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전력수급 문제 해결을 위한 단기 대책은 LNG 복합 화력의 추가 건설을 통한 단기 공급력 확충, 에너지 절약을 위한 규제 강화 등 매우 제한적이다.
작년부터 요란하게 우리 사회의 관심과 초점을 받았던 스마트그리드는 전력수급 안정화 대책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는다. 대규모 국책사업인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의 1단계 사업이 올해 끝남에도 불구하고 내년 여름 혹은 올해 동절기 전력수급 안정화에 기여할 것인가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다.
무슨 연유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에너지 절감과 수요관리를 할 수 있는 스마트그리드 하드웨어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하드웨어와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즉 다양한 선진적 요금제도 부재와 이러한 요금 제도를 자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전력 판매경쟁제도의 부재, 더불어 전력도매시장과 연계된 다양한 부하반응 시장, 비즈니스 모델 및 사업자의 부재 등으로 압축된다. 스마트그리드 기술 기반의 전기에너지 절약이 제도 미흡과 규제로 인해 작동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국가 전력판매 부문의 시장경쟁 체제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우리나라, 멕시코 등 매우 제한적이다. 미국과 기타 주요 국가는 수요반응과 에너지절약 관련 스마트그리드 기술(하드웨어)만 도입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스마트그리드 하드웨어를 개발해서 구축해도 소프트웨어가 없어 전기에너지 절약이 작동하지 않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부하반응과 에너지절약 시장을 최우선적으로 창출해 실질적으로 스마트그리드 기술이 살아 숨 쉬게 해야 한다. 에너지 절약과 관련된 스마트그리드 기술은 전기요금제도의 혁신과 수요관리 시장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미국의 대표적인 전기에너지 절약 및 부하반응 사업자인 에너녹이 시장에서 관리하는 전기부하량(3.6GW 이상)이 우리나라 전체 부하관리량 보다 크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박종배 건국대학교 교수 jbae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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