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시범단지에 입주하기로 한 15개 업체 가운데 일부가 ‘전략물자 통제체제’에 저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단지 조성 사업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하니 걱정이다. 이들 업체가 개성공단에서 생산하고자 하는 품목이나 이곳 공장 운영과 관련, 반출해 가야할 장비가 첨단반도체·부품·정밀광학기기·첨단소재 등 ‘바세나르 협약’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를 무시한채 이곳에서 제품을 생산하거나 장비를 반출해 운영할 경우 수출상 불이익은 고사하고 수출하지도 못할 수 있으며 외교 마찰까지 발생할 개연성마저 높다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입주 선정업체들의 생산 품목이 바세나르 협약에 위배되는 것임을 알고 있는 정부가 지금까지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1년 전부터 단지 입주를 추진해온 몇몇 업체는 이 문제로 불안한 나머지 계획 자체를 아예 포기했다고 하니 개성단지 사업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이 같은 불안감은 입주가 확정된 업체들도 똑같이 느낄 것이다. 지난번 금강산 관광사업이 쓸데없는 농담 한마디에 일시 중단된 것만 보더라도 대북사업은 안전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개성공단 조성사업은 남북 경협의 상징적인 사업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이 사업이 삐걱거리면 남북IT교류 위축은 물론 ‘중국-개성공단-한국’을 잇는 IT 삼각벨트 구축 계획도 차질을 가져오는 등 파급영향이 크다. 때문에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철저한 점검을 통해 문제점이 없는지 살피고 조금이라도 우려의 가능성이 있는 경우 대책을 세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도 지금까지 나름대로 바세나르 협약 문제를 충분하게 검토했을 것라고 본다. 하지만 이번 일은 개성공단 시범단지사업이라는 역사적인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다 빚어진 일종의 오류현상으로 봐주기엔 어쩐지 미덥지 않은 구석이 있다. 북한에 중고 컴퓨터 보내는 일도 ‘전략물자통제체제’에 묶여 엄두도 못내고 있는 실정에서 정부가 이 같은 민감한 사안을 이런 식으로 처리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본다. 개성공단 생산품목이 전략물자 수출통제체제에 저촉될 가능성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미 대사관 상무관계자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우리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에서 무기로 전용되지 않게 철저하게 관리 감독하면 된다”며 소극적으로 대응해온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전략물자 통제체제는 경제적 논리와 정치적 논리라는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어 정부가 겪는 고충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통제체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만큼, 정부도 전략물자 통제체제라는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순수한 남북교류’라는 카드로 미국을 설득하는 물밑노력도 해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 시범단지 사업은 우리의 자본과 기술력으로 고용창출과 생산제품의 가격 경쟁력 확보는 물론, 장기적인 안목에서 통일의 물꼬를 열 수 있는 염원이 담긴 의미 있는 사업이다. 정부와 북한 당국의 합의 내용을 신뢰하지만 기업들이 마음 놓고 투자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에 이 사업의 성공의 열쇠가 달려 있다. 대북사업은 정부가 100% 보장을 해준다고 해도 불안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들은 충분히 재검토하고, 북한과 추가적인 협상을 통해서라도 차후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걸림돌을 제거해 투자 기업들이 예기치 못한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오피니언 많이 본 뉴스
-
1
[콘텐츠칼럼]게임 생태계의 겨우살이
-
2
[ESG칼럼] ESG경영, 변화를 멈출 수 없는 이유
-
3
[ET단상] 자동차산업의 SDV 전환과 경쟁력을 위한 지향점
-
4
[ET톡]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 희망고문
-
5
[ET시론]정보화 우량 국가가 디지털 지체 국가, AI 장애 국가가 되고 있다
-
6
[人사이트]박세훈 근로복지공단 재활공학연구소장 “국산 고성능 의족, 국내외 보급 확대”
-
7
[디지털문서 인사이트] AX의 시대와 새로운 디지털문서&플랫폼 시대의 융합
-
8
[김태형의 혁신의기술] 〈21〉혁신의 기술 시대를 여는 서막(상)
-
9
[전화성의 기술창업 Targeting] 〈333〉 [AC협회장 주간록43] 2025년 벤처 투자 시장과 스타트업 생태계 전망
-
10
[김종면의 K브랜드 집중탐구] 〈29〉프로스펙스, 우리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