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재미있고 신기한 과학이야기 (14);우주의 천재지변

1910년, 서양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76년마다 돌아오는 핼리혜성이 어김없이 밤하늘에 나타나 긴 꼬리를 드리웠는데, 천문학자들의 계산 결과 지구가 그 꼬리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예측 때문이었다.

그 꼬리의 가스가 무슨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아무튼 인간에게는 유해한 독가스일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감이 널리 퍼져서 인류 종말의 절박감과 자포자기적인 분위기가 팽배하였다. 자살하는 사람들까지 나왔다.

그로부터 76년 뒤인 1986년에 핼리혜성은 다시 지구를 찾아왔다. 모두들 잘 알고 있다시피, 1910년에 인류는 종말을 고하기는커녕 혜성의 가스 때문에 호흡곤란을 일으킨 사람조차 한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지구가 핼리혜성의 꼬리 부분을 살짝 피해간 것은 아니다. 1910년 당시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도는 공전 궤도상에서 핼리 혜성의 꼬리 속을 통과했다(혜성의 꼬리 길이는 1천만에서 1억Km까지 이르는 것도 있다. 반면에 지구의 지름은 1만Km를 조금 넘는다).

간단히 말해서, 혜성의 꼬리라고는 해도 진공이나 마찬가지다. 지구의 대기권에 비하면 워낙 기체의 밀도가 낮아서 아무런 위험을 끼치지 못할뿐더러, 그 구성 성분들도 인간에게 유해한 것은 아니다.

혜성의 핵은 「지저분한 얼음덩어리」로서, 80% 정도가 물이고 나머지는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 암모니아 등이다. 꼬리는 이 성분들이 떨어져 나온 것이다. 또 눈에 보이는 꼬리의 상당 부분은 태양의 자외선을 흡수해서 빛을 내는 화학분자들이거나 아니면 이온화된 분자들이어서 실제 기체밀도보다 훨씬 밝게 보이는 편이다.

1910년의 공포는 이처럼 기우에 지나지 않았지만, 실제 우려해야 될 것은 혜성이 직접적으로 지구에 부딪칠 가능성이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영화 「딥 임팩트」가 바로 이러한 설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그리고 「아마게돈」이라는 영화도 곧 개봉될 예정인데 이 작품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설정을 다룬 것이다.

혜성이나 소행성, 거대 운석같은 천체들이 지구와 충돌하는 일은 불가항력이나 다름없는 글자 그대로 천재지변이다. 영화에서처럼 핵폭탄을 터뜨려 미리 부수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천체의 크기가 너무 크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이런 재난은 기나긴 지구의 역사에서 보면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1980년에 미국의 지질학자 알바레스는 공룡의 멸종 원인이 천체의 지구 충돌이었다는 견해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당시 그의 주장은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물적 증거가 더해져서 현재는 그 타당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당시의 지층을 조사해보니 천체 낙하시에 발생된 대량의 먼지들이 두껍게 층을 이룬 것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천체가 지구에 충돌하면 흙먼지들이 하늘을 뒤덮어 태양빛을 차단, 몇 년동안이나 「겨울」이 이어지면서 평균기온이 내려간다. 또 충돌때 충격을 받은 지각에서는 지진, 화산폭발, 해일 등이 일어나 육지를 휩쓸게 된다. 한편 「겨울」이 끝난 뒤에는 반대로 두꺼운 대기층에 의해 「온실효과」가 일어나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그 결과 극지의 얼음이 녹아 평균 해수면도 상승, 해발고도가 낮은 육지들은 물에 잠겨버린다. 이쯤되면 인류 사회를 포함한 지구 생태계는 엄청난 재앙을 겪게 되는 것이다.

아직까지 인류 역사에서는 이러한 대규모 천재지변의 기록이 없지만 아슬아슬했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1908년 시베리아 퉁구스카의 대폭발은 혜성이 떨어진 것으로 믿어지고 있고, 또 1947년에도 러시아 극동의 블라디보스톡 근방에 대규모 운석이 떨어졌다.

수십억년의 지구 역사 중에서 기록된 인류의 역사는 1만년도 채 안 된다. 대규모 천체 충돌이라는 천재지변은 언젠가는 피할 수 없는 사건이다. 앞으로 1천년이 넘도록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당장 내일 들이닥칠 재앙일 수도 있다. 글자그대로 「시간문제」인 것이다.

<박상준(과학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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