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의 경쟁환경이 격화하면서 합종연횡(合縱連衡)이 시대적 생존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기술은 물론 생산과 마케팅 면에서도 어제의 적을 오늘의 동지로 만드는 전략적 제휴나 아예 예속화해 버리는 기업인수합병(M&A)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같은 합종연횡에는 경쟁환경의 급변으로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도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경쟁은 하되 위험은 최소화한다」는 신경영원리를 도입하지 않고는 기업의 생존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최대 PC업체인 컴팩컴퓨터가 디지털이퀴프먼트(DEC)를 96억 달러에 인수합병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업계 전문가들은 컴퓨터업계 사상 최대의 빅딜로 평가되는 컴팩과 DEC의 합병은 시너지효과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환상적인 결합」이라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이들이 컴팩의 디지털이퀴프먼트 인수합의를 「예견된 놀라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도 컴팩의 철저한 준비성을 엿볼 수 있다.
이번 합병으로 컴팩은 초대형 종합 컴퓨팅업체로 부상, IBM에 이은 2위 자리를 놓고 HP와 경합을 벌이는 위치로 올라서 세계 컴퓨터시장에서의 일대 파란이 예상된다. 컴팩이 지난해 중대형 서버업체인 탠덤에 이어 디지털까지 흡수함으로써 단순한 PC업체가 아니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네트워킹, 컨설팅서비스 등을 망라하는 명실상부한 컴퓨터시장의 거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컴팩의 에커드 파이퍼 회장이 밝혔듯이 컴팩은 디지털의 하이엔드 유닉스 서버기술과 전세계에 퍼져 있는 디지털의 서비스조직 및 기술력을 그대로 이용하게 됐다는데 이번 합병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IDC의 한 분석가가 『컴팩이 이번 인수로 얻은 진짜 자산은 디지털의 「멀티벤더 커스터머 서비스(MCS)」부문』이라고 말할 정도로 디지털의 서비스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 수준이다.
컴팩의 이번 인수는 정보산업 환경에도 상당한 변화를 몰고올 전망이다. 분석가들은 우선 컴팩의 디지털 인수 이면에는 무엇보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MS)라는 두 승자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한때 세계 최대 유닉스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업체 중 하나였던 디지털이 역시 윈텔시스템의 최대업체인 컴팩의 자회사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인텔이 이번 합병의 최대 수혜자라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그동안 대형 컴퓨터업체들로부터 막대한 연구개발자금을 지원받아 왔던 인텔이 컴팩, 디지털의 통합으로 더 큰 힘을 얻게 될 수 있다는 데 근거하고 있다.
한국시장에선 더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 국내 컴퓨터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한국컴팩컴퓨터가 하루 아침에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우선 PC 및 PC서버 중심에서 중대형컴퓨터쪽으로 사업의 무게 중심을 옮겨가고 있는 한국컴팩컴퓨터의 변신노력에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온통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휩싸여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기업간 「빅딜」이 중요한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의 빅딜은 인위적인 요소가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빅딜은 강제성을 띠기보다는 모든 기업이 자유로운 시장원리에 따라 경쟁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진행되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M&A가 기업을 살리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합병이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예기치 못한 또다른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기회를 늘리고 위험을 줄이는 것이 M&A의 요건이다. 존재하지 않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거나 피합병회사에 지나친 프리미엄을 지급하면서 M&A를 한다면 실패로 끝날 공산이 크다. 기업문화 충돌로 인한 융합 실패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특히 최고 경영자의 직관에 의한 M&A 추진은 금물이다. M&A는 그만큼 고려할 게 많다는 얘기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도 성공을 담보할 수 없는 게 바로 합병이다.
우리 정부나 기업들도 이번 컴팩의 DEC 인수합병 사례를 반면교사(反面敎師)가 아닌 정식교사(正式敎師)로 인정해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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