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겐 어린이학교, 할머니·할아버지에겐 정원 교실...한국 첫 서양식 온실에서 만나는 조선시대 장원서

창경궁 대온실 교육관서 전통 화훼 체험… 궁궐 조경 관청 '장원서' 이야기와 함께
60세 이상 전용 '동궐 장원서', 창경궁 대온실서 5일간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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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서. 사진=국가유산진흥원

과거 조선 왕실에는 궁궐의 정원과 꽃, 과일나무를 돌보는 관청이 따로 있었다. 이름은 장원서(掌苑署). 궁궐의 사계절을 가꾸던 이 관청의 이름이 올가을 창경궁에서 다시 불린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조규형)와 국가유산진흥원(원장 이귀영)이 2026 가을 궁중문화축전 기간에 선보이는 시니어 프로그램 '동궐 장원서'다. 60세 이상이면 누구나 장원서 관원이 되어, 유리볼 속에 나만의 작은 정원을 짓는다.

프로그램은 창경궁 대온실 교육관에서 열린다. 대온실은 1909년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참가자들은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 옆 접수처에서 입장 팔찌를 받은 뒤, 옥천교와 춘당지를 지나 대온실까지 7분 남짓 걷는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가을 궁궐을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이 길이 체험의 첫 장면이다.

교육관 문 앞에서는 조선시대 장원서 관원으로 분한 배우와 나인이 참가자를 맞는다. 관원은 장원서가 어떤 일을 하던 곳인지, 궁궐의 꽃과 나무를 어떻게 가꾸고 관리했는지 소개하며 체험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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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서. 사진=국가유산진흥원

본격적인 체험은 40분간 이어진다. 이름은 '나의 소원(小苑) 가꾸기'. 소원은 작은 정원이라는 뜻이다. 전문 강사의 안내에 따라 참가자들은 먼저 내 정원의 이름과 주제를 정하고, 유리볼 안에 마사토와 피트모스, 숯을 켜켜이 깔아 터를 잡는다. 이어 화강석이나 화산석, 수석 가운데 마음에 드는 돌을 골라 산과 언덕을 세우고, 제주 모람덩굴을 심어 초록을 입힌다. 나무껍질로 길을 내고 핀셋으로 이끼를 다듬으며 마지막 풍경을 완성한다.

옛 선비들은 작은 돌 하나를 산으로, 한 뼘 연못을 강으로 여기며 집 안에 자연을 들였다. 손바닥 위 유리볼 하나에 한 사람의 정원 한 채가 담기는 셈이다. 흙을 만지고 돌을 고르는 동안 손끝에 집중하게 되는 시간은, 체험 자체가 쉼이 되도록 설계됐다. 모든 과정은 테이블에 앉아서 진행되며, 강사가 회차마다 참가자 곁을 돌며 돕는다. 완성한 정원은 10분간 포장해 집으로 가져간다. 체험 중에는 궁중 약차인 오미자차도 한 잔씩 제공된다.

교육관을 나서면 대온실 앞마당에서 부대 체험이 기다린다. '장원서의 꽃: 한 송이 꽃다발 만들기'에서는 꽃 한 송이로 작은 꽃다발을 엮을 수 있고, 장원서와 우리 자생화를 소개하는 전시 벽과 포토존도 마련돼 있다. 조선시대 궁궐에서 여러 심부름을 맡았던 차비로 분한 배우가 앞마당을 오가며 참가자들과 어울린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은 체험을 마친 뒤 창경궁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오늘 만든 정원을 품에 안고, 가을 궁궐을 한 바퀴 걸어보는 것으로 하루가 마무리된다.

'동궐 장원서'는 올가을 궁중문화축전이 세대별로 참여 문턱을 나눠 설계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축전은 이번 가을 연령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궁궐을 만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7~11세 어린이는 덕수궁 준명당에서 덕혜옹주의 교육 공간을 무대로 한 '준명당 어린이 학교'에 참여할 수 있다. 13세 이상 청소년과 온라인 세대는 역사 버추얼 크리에이터와 함께하는 창덕궁 '규장각 초계문신 워크숍'으로, 19세 이상 연인과 친구는 한복을 입고 궁궐을 걷는 '한복 입은 그대, 그림 속을 걷다'로 축전을 즐긴다. 그리고 60세 이상을 위한 '동궐 장원서'가 있다. 장애인 참가자도 함께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진미경 국가유산진흥원 궁중문화축전팀 팀장은 “궁궐은 모든 세대의 유산이지만, 세대마다 궁궐을 즐기는 속도와 방식은 다르다”며 “시니어 세대가 서두르지 않고 손끝으로 궁궐의 정원 문화를 경험하며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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