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단군 이래 가장 뜨겁다는 말이 나온다. 서로 만나면 날씨보다 삼성전자 주식 평단가 얘기로 아이스브레이킹을 한다. 반도체회사 노조의 파업 여부를 대통령은 물론 세계 유수 언론이 앞다퉈 보도한다.
정작 현장 전문가들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메모리 반도체가 유발하는 착시 효과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가가치가 높아지는 설계(팹리스)와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는 한국의 경쟁력이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강국의 역설'의 저자 안흥준 연세대 교수는 “이는 단순한 약점이 아니라 산업 전체 지속가능성을 흔드는 구조적 리스크”라고 우려한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기업의 글로벌 팹리스(설계) 시장 점유율은 0.8%에 불과하고, 파운드리(위탁생산) 점유율도 7% 수준이다.
대만과의 비교는 더 뼈아프다. TSMC 중심의 대만 반도체 생태계는 파운드리 70% 점유율에 중견 팹리스와 후공정 기업이 탄탄하게 버티고 있다. 한국은 초대형 기업 두 곳(삼성·SK)이 메모리를 떠받치고 있지만, '허리' 역할을 할 중견 기업 생태계가 취약하다.
메모리 반도체 호황은 호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낸드와 D램 시장은 3~4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됐다.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하고 기업 실적이 급변하는 '롤러코스터'였다. 최근 AI 서버 수요 폭발로 '슈퍼사이클'이 이어지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메모리 중심 성장 전략은 언제든지 변동성을 초래할 수 있다. 중국 업체들의 증설 움직임과 HBM 공급 과잉 우려가 2027년 이후로 고개를 들 조짐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도체 산업은 깊이 뿌리내린 큰 나무와 같다. 메모리 호황이라는 잎사귀가 무성할수록,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라는 보이지 않는 뿌리를 더욱 깊고 튼튼하게 내려야 한다.
당장 눈앞의 화려한 열매를 나누는 데만 매몰된다면, 거센 폭풍이 올 때 나무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당장의 몫을 챙기기보다 미래를 위한 기반을 함께 다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형두 기자 dudu@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