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글의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을 둘러싼 우리 정부의 태도가 묘하다. 지난 2월 구글이 9년 만에 축척 1대5000의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을 요청했을 때만 해도, 업계에서는 안보 문제로 고정밀지도를 반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이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벌이면서는 한국의 고정밀지도 반출 규제도 관세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지난 9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의 국회 발언에 따르면, 고정밀지도 반출 건은 국무조정실 주관 아래 국방부, 국가정보원,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논의한다고 했다. 통상 당국인 산업부가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정권이 사실상 공백인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휩쓸려 고정밀지도 해외 반출을 승인할 수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은 한 번에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 업계 주장이다. 안보, 주권, 산업 영향, 조세 문제까지 여러 사안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구글이 요구하는 축척 1대5000의 고정밀지도는 도시계획·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쓰이는 기업간거래(B2B) 지도다. 안보와 함께 디지털 주권, 공간정보 산업까지 직결된다. 고정밀지도가 구글의 해외 데이터센터로 넘어가면 우리 정부 통제 밖으로 벗어난다. 새 정부가 철학을 갖고 판단해야 하는 이유다.
구글이 한국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 지도 따져야 한다. 구글코리아는 2023년 법인세로 155억원을 납부했다. 같은 기간 네이버 법인세(4963억원)의 3%에 불과하다. 유튜브 등 영향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적다.
구글은 이번에 고정밀지도 반출을 요청하면서 한국에 지도 데이터를 처리하는 서버는 두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국내에 고정사업장을 두면 매출로 인식돼 세금을 부과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한 구글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