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148〉대덕연구단지를 '국가과학기술 메카'로 육성…1990년 제1회 과학기술진흥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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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대통령이 1990년 7월 10일 대덕연구단지에서 열린 과학기술진흥회의에서 참석자들과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대통령께서 입장하십니다.”

무더위가 커튼을 여는 1990년 7월 10일.

이날 오전 10시 30분 충남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과학재단 회의실에서 노태우 대통령 주재로 1990년 제1회 과학기술진흥회의가 열렸다. 6공화국 들어 세 번째 진흥회의였다.

진흥회의에는 박태준 민자당 최고위원, 이승윤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 남덕우 한국무역협회장, 김봉호 국회 경제과학위원장, 조완규 서울대 총장, 권이혁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등 국회·과학기술계·산업계·연구소·언론계 대표 등 22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과 악수를 나눈 노태우 대통령이 회의실 사각형 테이블 중앙에 앉고 노 대통령 오른쪽에 이승윤 부총리, 왼쪽에 정근모 장관이 자리를 잡았다.

“지금부터 1990년 제1회 기술진흥확대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날 진흥회의는 기존 방식과 크게 달랐다. 보고가 아닌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했다.

과학기술처가 '대덕연구단지 발전계획과 앞으로 연구전략'을 슬라이드로 보고했다. 이어 연구계·학계·사업계를 대표하는 3명이 같은 주제로 발표하고 참가자 자유토론, 대통령 지시사항 순으로 계속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날 진흥회의에서 과학기술 진흥과 대덕연구단지 육성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했다.

노 대통령은 “대덕연구단지 건설공사를 1992년 말까지 완공해 '국가과학기술 메카'로 자리 잡도록 하고 1996년까지 과학기술 투자를 국민총생산(GNP) 대비 3~4% 수준으로 높여 민간기업의 투자도 획기적으로 늘리는 등 종합대책을 수립해 달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과학기술 진흥과 혁신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크게 키워 가기 위해 기업은 기술개발 투자를 늘리고 대학은 기업과 대학 간 협동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면서 “특히 정부출연연구기관은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원천기술과 우리 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에 주력해 산업기술 개발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노 대통령은 또 “점점 첨예화하는 세계 기술보호주의와 부족한 고급 과학기술 인력 부족, 연구예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협력과 공동연구를 강화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은 이에 앞서 '대덕연구단지 발전계획과 앞으로 연구전략' 보고를 통해 “1992년 말까지 대덕연구단지에 8000억원(정부 1800억원, 민간 6200억원)을 투입해서 대덕단지를 세계적인 '과학기술문화도시'로 건설, 21세기 고도 과학기술 시대에 대비한 국가과학기술 메카이자 국제공동연구 거점으로 육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단지 내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주축으로 민간연구소를 참여시켜 광기술, 고화질TV, 제3세대 항생제, G4팩시밀리, 지능형 컴퓨터 등 10대 핵심 첨단 전략제품을 개발해 산업계로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보고했다.

정 장관은 “오는 2001년까지 전국 대학에 우수연구센터 100개를 육성해 기초연구를 활성화하고, 한국과학기술원 홍릉캠퍼스에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첨단기술 인력을 교육하기 위한 전문석사 과정을 개설하며, 시스템공학센터(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를 중심으로 과학기술 정보를 수집·가공하는 과학기술정보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과학기술처 산하 출연연구기관은 기술 수요가 있는 부처들이 공동으로 활용하는 범부처적인 산·학·연 협동 구심체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면서 “연구사업 선정 시 기술 예측과 수요 전망을 강화하고 연구비 관리방식을 엄격하게 평가해 국가발전 목표에 부응하는 공공연구기관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1992년까지 32개 연구기관을 추가로 입주시켜 모두 50여개 기관이 들어서는 대덕연구단지를 건설하기 위해 과학기술처 장관을 위원장으로 관계부처와 경제단체 대표, 각계 전문가들로 대덕연구단지 조기조성위원회를 구성하고 단지 내에 '대덕문화센터'와 '메디컬센터'를 설립해 쾌적한 연구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 장관은 이어 “정부의 과학기술 입국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실천해 당면한 경제 사회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가오는 고도 과학기술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과학기술 혁신에 투자를 집중해서 기초연구, 응용연구, 개발, 설계, 생산, 시장화에 이르는 과학기술 전 주기와 연계한 기술 발전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또 “대덕연구단지 내에 한국화학연구소(현 한국화학연구원)를 중심으로 럭키중앙연구소, 쌍용중앙연구소, 한양화학연구소 등 민간연구소와 연계해 대규모 화학연구개발군을 형성하는 등 유사 분야 출연연구소와 민간연구소가 위성연구개발군을 형성토록 하겠다”고 보고했다.

정 장관 보고에 이어 '산학연 연계강화를 통한 산업기술력 제고와 기술혁신 확산'을 주제로 연구계·학계·기업계 대표 3명이 발표하고, 참석자 자유토론 순으로 이어졌다.

연구소를 대표해서 주제발표를 한 이충희 한국표준연구소(현 한국화학연구원) 소장은 “이공 계통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은 현재 각 부처 산하에 24개가 있으며, 박사급 1700여명을 포함해 1만여명의 연구인력이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이들 연구기관은 그동안 △기업화를 목적으로 한 연구사업의 실용화율 55% △시장 진입 단계의 187개 연구과제로 매출액 1989년 5800억원, 공업소유권 출원 595건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앞으로 산업기술력을 제고하고 기술혁신을 확산하기 위해서는 △출연연구기관의 기술을 중소기업에 전수하고 과학기술자의 연구개발집약형 중소기업 창업제를 보급하며 △국책연구개발사업을 확대해 핵심 첨단기술 기업화를 확산하고 △국내 산학연 협동 극대화와 국제공동연구를 강화하며 △연구기관의 전문인력과 연구시설을 활용해 산업체와 대학 인력을 교육·훈련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계 대표로 나온 경북대 손병기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대학 역할은 과학기술 인력의 배출, 기초과학기술의 연구개발, 산·학·연 협동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면서 “급격하게 변화하는 산업구조에 맞춰 미래지향적인 대학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합리적인 인력수급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손 교수는 또 “고급 과학기술 인력의 80%인 3만6400명(박사 9000명)의 연구인력을 보유한 대학 잠재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전국 대학별로 비교우위에 있는 분야를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우수연구센터를 집중적으로 지원해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기술혁신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을 대표한 김채겸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은 “최근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조사 대상 기업의 84%가 현 경제의 어려움이 기술적 요인과 직결해 있다고 응답한 것처럼 수출 부진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뿐”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산업기술력을 향상하기 위한 기업 측의 대책으로 △경영자원을 기술혁신에 최우선적으로 투입하는 기술중심 경영전략 △고유의 일류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기술개발투자 확대 △기술인력의 국내외 연수 확대와 기술정보의 수집능력 강화 등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주제발표에 이어 자유 토론에서 남덕우 한국무역협회장은 “지역별 대학의 우수연구집단에 대해 기업이 적극적인 지원과 위탁연구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조완규 서울대 총장은 “과학기술진흥을 위해서는 부처 간 소관 다툼을 떠나 국가 전체의 과학기술투자를 늘리고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범부처 협조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황승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현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이 구심체가 돼 산·학·연 공동연구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재균 쌍용중앙연구소장은 “대덕연구단지의 조기 완공을 통해 연구개발 자원을 결집, 효율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날 회의 주재 후 참석자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과학기술 진흥 방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거듭 관계자들에게 당부했다.

“대덕연구단지가 '국가과학기술 메카'로 자리 잡도록 해 주기 바랍니다.”

노 대통령의 이 당부는 과학기술계와 대덕연구단지 입주 기업에는 더할 나위없이 기쁜 복음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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