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과학향기]고양이 집사가 생긴 사연은? 인류 농사의 출발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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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주리대 연구팀은 유전자 분석으로 고양이 가축화의 기원과 과정을 밝혀냈다.(출처: 플리커)

개가 수만년 전 늑대와 갈라져 나와 인간생활 영역에 들어온 과정은 비교적 정확히 밝혀졌다. 개와 함께 우리와 많이 어울려 사는 반려동물 고양이는 어떨까. 그동안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던 고양이 가축화 기원이 최근 미국 미주리대 수의과대학 연구팀의 유전자 분석 연구로 드러났다.

◇1만2000년 전 비옥한 초승달에서 처음 만난 인간과 고양이

인간과 함께 사는 집고양이는 야생 고양이(Felis Catus)에서 갈라져 나온 아종이다. 레즐리 라이온즈 미국 미주리대 수의과대학 교수팀은 자체적으로 구축한 세계 고양이 유전자 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해 유럽과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지역 40여개 국가에서 얻은 고양이 유전자 샘플 2000여개를 분석했다. 이 샘플에는 비교를 위해 아프리카 야생고양이 4마리도 포함됐다. 연구팀이 분석한 유전자 표지는 20개 이상으로, 고양이 가축화 기원에 대한 다양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연구는 지난해 11월 국제학술지 '유전(Heredity)'에 실렸다.

연구팀은 유전자 표지 단일염기다향성(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s)에 먼저 주목하고 고양이가 가축화된 역사에 대한 단서를 얻었다. 분석 결과, 고양이는 1만2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시작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끼고 있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인간과 처음 함께 살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지역은 인류가 처음 농사를 시작한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 집고양이 유전자는 수세대에 걸쳐 전수된 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채 유전자 변이가 일어났다. 이는 고양이는 오직 이 지역에서만 가축화가 이뤄진 뒤 인간의 이동경로와 함께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서유럽과 동남아시아 같이 지역에 따라 집고양이 유전자가 크게 다른 것도 '거리에 의한 고립' 때문이었다. 참고로 말이나 소 등 다른 가축동물은 다양한 지역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가축화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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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역에서 채취한 고양이 유전자 샘플의 이형접합성(heterozygosity) 을 나타낸 지도. 이형접합성은 염색체의 특정 형질에 대한 유전자 자리에 서로 다른 대립 유전자가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출처: Heredity)

연구팀은 또 다른 유전자 표지인 '미세부수체(Microsatellite)'도 연구에 활용했다. 미세부수체는 1~6개 혹은 그 이상의 염기쌍 서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DNA 부위로, 다른 DNA 영역보다 더 높은 돌연변이율을 나타낸다. 분석 결과, 고양이 미세부수체는 지난 수백 년 동안 빠르게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이는 수백년 동안 고양이 개체 수와 품종이 빠르게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라이언즈 교수는 고양이를 '반-가축화(Semi-Domesticated)' 동물이라 규정했다. 그는 “우리가 고양이들을 야생으로 풀어놓는다면 고양이들은 여전히 해충을 사냥하고, 스스로 생존하며 짝짓기를 할 수 있다”며 “개나 다른 가축화된 동물들과 달리 우리는 가축화 과정에서 고양이들의 행동을 그렇게 많이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고양이들은 다시 한번 특별한 동물이란 것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유목민도 집사로 만든 집고양이

'집사'라는 시쳇말이 생겼을 정도로 현대 고양이는 인간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산다. 1만2000년 전 인간과 동거를 시작한 고양이는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았을까. 애슐리 하루다 미국 엑스터대 고고학부 연구원이 2020년 발표한 연구에서 고대 고양이와 인간관계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연구팀은 중세 초 터키계 오구즈족이 살던 카자흐스탄 남부 잔켄트 유적지에서 완벽하게 보존된 고양이 유골을 발견했다. 유골 탄소 연대측정 결과 이 고양이는 775~940년 사이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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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 오구즈 족이 살던 카자흐스탄 남부 잔켄트 유적지에서 발견된 고양이 유골. 부상을 입었지만, 영양 상태가 좋아 인간의 보살핌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 Scientific reports)

이 고양이 유골에서는 앞발과 뒷발 등 몸 곳곳에서 골절 흔적이 발견됐으며, 치유가 진행 중이었다. 이빨도 여러 개 빠져 있어 야생에서 스스로 먹이를 찾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고양이는 유적지에서 함께 출토된 개보다 훨씬 영양상태가 좋았다. 연구팀은 사람들이 고양이가 상처를 회복하도록 정성껏 보살폈기 때문에 부상이 있어도 좋은 영양 상태를 유지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유골이 발견된 잔켄트 유적지는 당시 실크로드의 교역망 중 하나로, 주로 유목민들이 거주했다. 오구즈족 역시 유목민으로, 연구팀은 농경을 하는 정착민도 아닌 유목민이 고양이를 기르게 된 이유는 신기한 동물을 키우는 문화 때문이라 추측했다.

하루다 연구원은 “오구즈족은 가축을 돌보는 개처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동물만 길렀다고 여겼는데 어떤 쓸모도 없어 보이는 고양이를 기른 것은 필요가 아닌 문화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며 “유목민이 실어 나르던 교역품에 고양이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글 : 박영경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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