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업 현장의 근로 상황을 보면 우리 예상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마주칠 때가 종종 있다. 일견 스타트업 직원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박봉에 근무를 할 것으로 예측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적지 않은 숫자의 창업자가 시장 예측과는 달리 일정 수준 이상 급여를 지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은 어떤 이유로 높은 급여를 지급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은 행동경제학 실험에서도 도출된 바 있다. 에른스트 페어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경제학자들이 고안한 전형적인 실험에서는 참가자 일부가 고용주 역할을, 다른 일부가 근로자 역할을 맡는다. 이 실험에는 두 가지 단계가 있다. 첫 단계에서 고용주는 최저 수준의 급여를 공개한다. 어떤 근로자든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제안을 받아들인 순간 구속력을 가진 계약이 된다.
실험의 두 번째 단계에서는 계약을 한 각각의 근로자가 업무 질을 선택한다. 업무 질 혹은 노력 정도는 0~1 사이 숫자로 정한다. 하지만 업무 질을 높이는 데도 대가가 따른다. 숫자가 높아질수록 근로자 비용이 높아지는 것이다. 현실에서처럼 근로자가 업무 질을 높이려면 열심히 일을 해야 하고, 더 많은 노력을 투여한다는 것은 곧 근로자 입장에서 더 많은 비용을 의미하는 셈이다. 이기적이고 논리적인 근로자라면 일하기로 결정한 순간 봉급은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언제나 업무 질을 '0'으로 선택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기적이고 논리적인 고용주 측면에서는 구직자가 늘 과잉상태이기 때문에 언제나 최소한의 급여만 제안할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업무 질을 결정하는 건 근로계약 이후 문제이기 때문에, 고용주가 일단 계약을 체결한 후에는 성과급을 준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들 장치가 없다. 실험결과가 참가자들이 모두 이기적이고 논리적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라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고용주는 근로자가 양질의 업무를 선택하도록 유인하기 위해 최저임금보다 많은 급여를 지불한다. 급여가 적으면 근로자들이 당연히 업무 질을 낮출 것이라고 예상하는 듯하다.
한편 후한 급여를 제공받는 근로자는 최소 '0'보다 높은 업무 질을 선택한다. 상호주의라는 개념으로 가장 잘 설명되는 효과다. 사실 높은 급여를 받은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높은 수준의 업무 품질을 선택했다. 급여가 인상됨에 따라 업무 품질의 평균도 올랐다. 예를 들어 급여가 30~44에서 90~110으로 올라가자 업무 품질의 평균치는 0.1에서 0.5로 무려 다섯 배나 상승했다.
또 다른 실험은 버클리의 경제학자 조지 애컬로프가 상호 호혜적인 관계에 대한 실험을 감행했다. 에컬로프는 근로자와 고용주의 관계를 부분적인 선물 교환으로 봤다. 물론 여느 시장 거래와 마찬가지로 노동계약에서도 돈이 오고간다.
하지만 애컬로프는 이 거래의 일부는 비록 성문화되지는 않았지만 강제성이 높은 규칙 즉 상호주의라는 규범에 의해 지배된다고 봤다. 그러한 시스템에서 고용주는 자발적으로 필요한 것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고, 그에 보답하기 위해 근로자는 부가 노력을 기울인다. 이 시스템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관찰했던 한 고용주는 성과를 명확히 측정해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시스템 대신, 이 시스템을 선택했다. 근로자 생산성이 쉽게 수치로 파악되는 상황이지만 고용주는 의도적으로도 자발적으로 먼저 성과에 대한 보상액보다 많은 액수의 급여를 인상했다. 그 결과 생산성은 높아졌다.
이상의 실험 결과는 근로자들 역시 단순히 급여에 따라 수동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CEO가 자신들에게 어떠한 호혜적인 관계를 제시해 주느냐에 따라 능동적인 자세로 일하게 된다는 점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실험이다. 적지 않은 창업자들이 자신의 직원들에게 적지 않은 급여를 주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aijen@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