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의 AI 시대와 한국의 선택] 〈4〉0.1%의 핵심기술과 한국 AI의 생존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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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데이톤 대표

1967년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주민들에게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특정 수신인에게 소포를 직접 전달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단, 소포는 우체통에 넣는 대신 자신이 이름으로만 알고 지내던 지인들을 거쳐 전달돼야 했다. 놀랍게도 정확히 도착한 소포들은 평균 5.5명의 중간 전달자를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단 '6단계'만 거치면 세상 모든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6단계 분리 이론(작은 세계 실험)'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2002년 알베르트 라슬로 바라바시는 저서 '링크'에서 이러한 연결 구조가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교통망, 인터넷 등 다양한 네트워크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됨을 증명했다. 특히 연결 정도가 강한 소수의 '허브(Hub)'가 존재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연결이 매우 약한 구조가 '매우 작은 세계'를 구성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예컨대 미국의 항공 노선 분포를 보면 여객 수송량의 대다수(약 80%)가 시카고나 덴버 같은 몇몇 주요 허브 공항을 통해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이처럼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비롯되는 현상을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의 이름을 따 '파레토의 법칙(80/20 법칙)'이라 부른다. 상위 20%의 핵심 입지가 부동산 가치의 80%를 주도하거나, 상위 20%의 VIP 고객이 기업 수익의 80%를 차지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 법칙은 최첨단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발견된다. 자율주행 기술을 선도하는 웨이모의 브라이언 윌트는 “자율주행차의 어려운 점은 일반적인 주행이 아니라, 바로 후미 부분의 불안정성(instability in the tail)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후미는 자율주행 AI 모델이 학습하는 데이터 분포상의 '긴 꼬리(Long Tail)' 영역을 의미한다.

학습 데이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상 주행 상황과 달리, 롱테일 영역은 스케이트보더가 갑자기 뛰어들거나 앞 트럭에서 상자가 떨어지는 등 드물고 예측 불가능한 예외적 상황들을 뜻한다. 보통의 인간은 평생(약 60년) 동안 약 96만Km를 운전하는데, 이는 웨이모 차량이 단 이틀 동안 운행하는 양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예외적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야말로 자율주행 기술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최근 AI 연구는 자율주행차가 이러한 드문 상황을 스스로 파악하도록 '롱테일 학습'이나 '세계 모델'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AI는 기존 패턴을 답습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학습되지 않은 새로운 모호함에는 서툴기 때문이다. 95%의 일반 주행 성능을 높일수록 나머지 5%의 롱테일 상황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은 AI 개발에서 마주하는 뚜렷한 '파레토 상충관계(Trade-Off)'를 보여준다.

이는 비단 자율주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AI 모델이 추론할 때 전체 신경망 뉴런 중 92%는 활성화되지 않고, 단 8%의 뉴런이 대부분의 연산을 실행한다. 이러한 집중화 현상은 전문가 혼합(MoE)이나 가지치기 같은 최적화 아이디어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파레토 상충관계가 만들어내는 성능 한계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흥미롭게도 파레토의 법칙은 생물 세계의 '단백질 상호작용' 네트워크에서도 관찰된다. 고작 20%에 불과한 '허브 단백질'이 나머지 80% 이상의 단백질 상호작용과 신호 전달 역할을 독점한다. 덕분에 80%의 일반 단백질 몇 개가 손상되어도 전체 생명 활동은 유지된다. 그러나 핵심 허브 단백질(20%)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체계가 마비되어 치명적인 질병이나 죽음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생각하면, 핵심 역할이 없는 '긴 꼬리(80%의 비허브 단백질)'에서 발생하는 돌연변이야말로 생명체에게 안전하면서도 중요한 변화의 단초가 된다. 치명적인 위험 없이 축적된 이 작은 변이들이 결국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진화의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AI 기술과 연결시켜 본다면, 지금 눈에 보이는 거대한 플랫폼 권력보다 소수의 0.1% 핵심 기술이 훨씬 더 큰 가치사슬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글로벌 빅테크(구글, 오픈AI 등)가 이미 95%의 거대 허브를 장악하고 있다면, 한국은 우리만의 특화된 문화·산업 데이터나 틈새시장인 '롱테일 영역'에서 결정적인 돌연변이를 만들어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약 4억7000만년 전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우리의 조상이 바다를 벗어나 육지로 본격적으로 올라오며 대진화가 시작됐고 그 후손들은 지구를 지배했다. 인류의 지능을 모방한 AI 역시 이제 막 데이터의 바다를 벗어나 새로운 차원의 육지로 올라가려 하고 있다. 이 거대한 도약은 시스템의 중심이 아닌, 롱테일 데이터라는 변방의 작은 돌연변이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이제 AI 모델들은 단순한 성능 경쟁을 넘어 급변하는 환경에서의 '생존'이라는 질문에 직면해 있다. 이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육지에 안착한 AI 모델들의 가계도만이 앞으로 번성한 후손들로 채워질 것이다.

김동현 데이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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