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피지컬 AI 경쟁, 한국형 성공방정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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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형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대표.

최근 인공지능(AI) 산업 중심축이 생성형 AI에서 '피지컬 AI(Physical AI)'로 이동하고 있다. AI가 단순히 정보를 생성하고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현실 세계를 인지하고 판단하며 직접 행동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자율주행차와 로봇은 이러한 피지컬 AI를 대표하는 산업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국내에서 자율주행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여전히 하나의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자율주행 경쟁의 중심은 결국 로보택시이며, 테슬라나 웨이모와 같은 기업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인식이다. 물론 로보택시는 자율주행 기술의 중요한 활용 분야다. 하지만 산업 경쟁의 관점에서 본다면 과연 그것이 한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글로벌 로보택시 시장은 막대한 자본과 데이터·플랫폼 경쟁력이 승패를 좌우하고 있다. 수백만 대 차량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업과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지속하는 기업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후발주자가 동일한 방식으로 경쟁하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적지 않다.

산업의 역사를 돌아보면 새로운 모빌리티 기술이 항상 개인 소비자 시장에서 먼저 성장한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 등장한 내연기관 자동차는 당시 기준으로 매우 비싼 신기술이었다. 도로와 정비 인프라도 부족했고 일반 대중이 쉽게 구매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버스와 상업용 운송 분야는 달랐다. 여러 이용자가 비용을 분담할 수 있었고 운영 효율 개선 효과도 분명했다. 새로운 기술은 공공교통과 운송 서비스 영역에서 먼저 경제성을 입증하며 사회에 확산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자율주행 역시 비슷한 위치에 서 있다. 많은 사람이 자율주행의 미래를 로보택시에서 찾지만 실제로 가장 먼저 대규모 수요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은 영역은 대중교통과 셔틀 서비스다. 교통 소외지역의 이동권 문제·운수업계 인력 부족·심야시간 교통 공백 등 사회가 이미 해결해야 할 과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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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응답형 교통 구성도.(자료:국토교통부)

특히 대중교통과 셔틀 서비스는 단순한 민간 비즈니스가 아니다. 국가·지방정부가 정책적으로 수요를 창출할 수 있으며, 국민이 기술 발전의 효과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공공서비스이기도 하다. 자율주행 기술의 사회적 수용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검증할 수 있는 최적의 시장인 셈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경남 하동에서는 교통 소외지역 주민들의 이동권 확보를 위한 자율주행 버스가 운영되고 있으며, 서울에서는 새벽 시간대 시민의 출근을 지원하는 자율주행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운수 업계의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교통복지 확대라는 공공적 가치도 함께 실현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는 단순한 기술 시연이 아니다. 자율주행 기술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한국형 자율주행 모델이 이미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세계적 자동차 강국이다. 그러나 자동차 강국이 반드시 자율주행 강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근 우리나라 자율주행 기업은 일본 현지 상사와 운수사업자와 협력해 수요응답형 교통(DRT) 기반 자율주행 서비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통적 자동차 강국에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과 서비스를 수출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싱가포르에서도 우리나라 기업이 공공도로 자율주행 면허를 취득하고 기업 셔틀 서비스를 중심으로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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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응답형 교통 시스템 시장 전망.(자료:글로벌마켓인사이트)

이는 단순한 기술 실증이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실제 사업 모델이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사례는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우리가 반드시 미국식 로보택시 모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교통·셔틀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한국형 자율주행 모델 역시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 개발만이 아니다. 시장을 만드는 일이다. 그동안 정부는 다양한 실증사업을 통해 자율주행 기술 발전을 지원해왔고, 그 결과 국내 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제 실증을 넘어 실제 시장을 확대하고 산업 생태계를 성장시킬 단계에 들어섰다. 자율주행 버스와 셔틀은 교통 소외지역·산업단지·공항·대학·관광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초기 수요 창출에 적극 나선다면 국내 기업은 이를 기반으로 기술을 고도화하고 해외 진출 경쟁력까지 확보할 수 있다.

피지컬 AI 시대의 경쟁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다. 자국 산업에 적합한 시장을 얼마나 빠르게 만들고 생태계를 구축하느냐의 경쟁이다. 한국이 반드시 미국과 같은 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 우리가 강점을 가진 공공교통과 셔틀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국형 성공 모델을 만들고 이를 세계 시장으로 확산시킨다면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이 피지컬 AI 시대 주도권을 확보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경쟁력 있는 길이다.

한지형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대표 hjh@autoa2z.co.kr

〈필자〉한양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현대차 연구소에 입사했다. 현대차 미국 라스베이거스 최초 주·야간 자율주행, 서울·평창 자율주행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이후 오토노머스에이투지(Autonomous A2Z)를 창업해 5년 만에 국내 1위, 세계 13위 독보적 성과를 창출했다. 현재 4차산업혁명위원회, 한국교통안전공단,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에서도 모빌리티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모빌리티 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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