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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무역기술장벽(TBT)이 거세지고 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TBT를 활용하는 개도국이 늘면서 우리 기업 수출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과거 품질과 안전 부문에서 규제를 강화한 개도국들이 최근 에너지효율등급, 사이버보안 등에서 TBT 통보를 늘린다. 기술 진보에 따라 환경 관련 규제를 강화하면서 무역장벽을 높이고 있다.

개도국의 TBT 통보는 앞으로도 지속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제조업의 현지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우리 수출기업의 지속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국내 대응 조직 확대와 수출기업 보호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무역장벽 높이는 개도국…TBT 통보 급증

기술규제는 환경, 안전 등 공익을 위한 정책 수단이다. 하지만 국제기준에 적합하지 않다면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으로 작용한다. 과학적 근거 없는 과도한 에너지효율을 요구하거나 국제적 시험인증서를 인정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

각국 기술규제는 지속 확산되는 추세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다. 최근 코로나19 펜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글로벌밸류체인(GVC) 재편, 미·중 무역 마찰 등으로 각국에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각국 TBT 통보는 한층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그동안 선진국들이 주도한 보호무역주의가 개도국으로 확산되면서 우리 수출 산업의 위협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최빈국을 포함한 개도국이 통보한 TBT는 총 1751건으로 집계됐다. 76건을 기록한 1995년부터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세계무역기구(WTO) TBT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기준 약 63%(최빈국 포함 시 84%)로 나타났다.

선진국의 TBT 통보는 1995년 288건에서 2019년 323건으로 연 평균 약 0.5% 증가했다. 개도국 전체 통보는 연평균 14.0% 늘었다. 최근 3년간 최빈국 통보가 1361건(21.8%)에 달하면서 선진국(970건, 15.6%) 통보를 앞질렀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TBT 연례보고서에서 “개도국의 TBT 통보 증가는 자국 산업을 육성하고 보호하기 위해 제도나 규제를 도입하면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 “각국이 제정하려는 규제를 선제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주요 국가를 살펴보면 우간다는 최근 5년간 무려 1591건 TBT를 통보했다. 2017년부터 매년 WTO 회원국 중 가장 많은 통보 건 수를 기록 중이다. 식품(27.2%), 화학 (7.5%), 농업(7.3%) 등 분야 비중이 높다. 커피, 차 등 재배 농업이 전체 GDP의 약 72%를 차지하는 산업 특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베트남은 총 76건 TBT를 통보했다. 자동차(21.1%)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핵심 주요 부품을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해 조립하는 자동차 산업 관련 규제가 강화된 영향이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 2017년 자국 자동차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한 '자동차 제조 및 수입에 관한 칙령'을 발표했다.

대만이 2015~2019년 통보한 TBT는 화학(16.4%), 가전제품(10.4%), 통신(5.7%)에서 총 317건이다. 대만 환경보호국(EPA)은 2018년 5월 '화장품위생안전관리법'을 제정해 각종 의무화 규정을 강화했다. 해외 제품 수입이 늘어난 가전 부문에서도 안전 기준을 강화했다.

인도는 총 64건 TBT를 통보했다. 식품(29.7%), 화학(10.9%), 철강(9.4%) 등에서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인도 식품안전청(FSSAI)은 '식품안전 및 표준규정'을 개정하면서 식품사업허가·등록 요건과 식품성분 정보 표기에 대한 라벨링 요건을 강화했다. 최근에는 수입 비중이 높은 유기화학 산업에서 품질기준 강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효율·사이버보안 규제 넘어라

각국은 급증하는 에너지수요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에너지효율등급과 라벨 부착을 의무화하는 등 신규 규제를 계속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개도국에서는 에너지효율을 향상시킨다는 명목으로 지나친 기술 기준을 적용하는 사례가 있다. 이는 우리 제조기업 수출을 가로막는 대표적 장애물이다.

우리나라가 작년에 제기한 특정무역현안(STC)은 8개국 13건이다. 이 가운데 인도, 에콰도르,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효율 관련 기술규정이다. STC는 회원국이 WTO TBT 위원회에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안건이다. 다자 테이블에 의제를 내놓기 때문에 상대국을 압박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과거 페루와 파나마 에너지효율등급 규제에도 STC를 제기했다.

사이버보안도 새로운 수출 장벽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첨단 기술 경쟁이 사이버 환경에서 진행되면서 관련 규제를 마련하는 국가가 속속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화웨이를 둘러싼 미·중 마찰이 대표 사례다.

현재 유럽과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은 사이버보안 관련 법령과 인증체계를 정비 중이다. 네트워크가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제품에 연결되면서 보안 적용 영역이 확대되는 데 따른 조치다.

유럽연합(EU)은 작년 4월 유럽 디지털 단일 시장 보안을 강화하기 위한 사이버보안 인증제도 도입과 유럽 네트워크 정보보안원(ENISA) 지위 승격을 골자로 한 'EU 사이버보안법'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유럽 내 정보통신기술(ICT) 제품과 서비스 전반에 대한 사이버보안 분야 인했증 체계가 통합됐다. 가맹국 간 서로 다른 인증제도 때문에 겪었던 불편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U 집행위원회는 2023년까지 인증 의무화 대상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후 전력, 수도, 운송, 의료, 에너지 등 주요 인프라와 소비자의 생명, 신체, 건강 등 안전에 밀접한 인터넷 연결 ICT 제품과 서비스에 인증을 의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사이버보안 규제는 다양한 개별법에 관련 내용이 산재됐다. 현재 연방정부가 사용하는 정보시스템 공공 조달과 관련해 두 가지 인증을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는 전체 사이버보안 시장 최대 투자자이자 소비자로 사이버보안 산업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인증을 취득하는 것이 유리하다.

중국은 2017년 6월 '네트워크안전법'을 시행, 사이버보안과 개인정보보호 규제를 통합하고 관련 규정을 구체화했다. 기존 '반테러리즘법' '국가안전법' 등 관련 규제를 종합해 자국은 물론 외국계 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의견수렴 단계를 지나 본격적 심사에 들어간 하위 규정이 많기 때문에 국내 관련 업계의 지속적 관심이 요구된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