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소재·부품·장비(소부장)와 관련된 소식이 자주 들린다. 소부장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수출 우방국인 백색국가에서 제외함으로써 많은 관심을 받게 됐다.
소부장 가운데 '장비'는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산업 환경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군가는 장비라고 하면 삼국지 속 영웅을 먼저 떠올리지만 제조업에서 장비는 삼국지의 장비보다 비중이 더 크다. 자동차, 반도체, 방송, 의료 등 일상에서 접하는 많은 분야에서 장비가 활용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대란이 인 마스크까지도 장비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를 보면 모든 제품이 장비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소재나 부품도 중요하지만 최종으로는 장비가 제품을 잘 만들어내야 한다. 예를 들어 장거리 운행이 가능한 고효율 전기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철재보다 가볍고 튼튼한 소재나 효율이 높은 배터리뿐만 아니라 '차체(Car Body)'나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장비도 필요하다. 소재와 부품은 결국 장비를 통해 제품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을 들여다보자. 이 법에 따르면 소재·부품은 '상품의 제조에 사용되는 원재료 또는 중간생산물'이다. 장비는 '소재·부품을 생산하거나 소재·부품을 사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장치 또는 설비'라고 정의한다. 소부장에서 말하는 장비란 '제품을 만드는 제조장비'인 것이다.
한국기계산업진흥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장비는 근대 화폐 주조 기관이던 전환국(典〃局)이 1886년에 도입한 독일식 압인기다. 당시 면업(綿業)을 담당하던 직조국(織造局)에서는 서구식 직조기계를 들여오기도 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초 전문 기계 업체도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1937년 광산 채굴기계와 토목기계 생산을 목적으로 설립된 조선기계제작소가 이어져 온 회사다. 중요한 역사 의미가 있는 장비 가운데 하나는 1959년에 만들어진 화천기공의 벨트 구동식 선반이다. 이는 국내 최초로 개발된 금속 가공용 공작기계다.
이렇게 태동한 우리 장비 산업은 2017년 기준 세계 6위 규모로 눈에 띄게 성장했다. 물론 여러 도전 과제도 남아 있다. 숙련된 기술자는 점차 고령화되고 있으며, 산업 현장 인력난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또 장비 자체에 제조공정 경험이 담기다 보니 선진국은 제조 장비를 전략 무기로 활용한다. 일본 수출 규제 강화와 같은 단편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2018년부터 본격화된 미국과 중국 간 무역 분쟁도 이와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도 장비 산업의 자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제조업 경력이 100년 이상 된 독일과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렵겠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장비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법률과 정책 기반을 마련했다. 앞으로 효과 높은 연구개발(R&D) 투자와 실효성 있는 정책이 꾸준히 추진된다면 글로벌 장비 강국도 욕심내 볼 만하다.
이 글이 인쇄된 신문지나 컴퓨터·휴대폰도 장비를 통해 생산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장비가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는지 바로 알아챌 수 있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더욱 고도화된 장비가 우리 일상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모든 제품이 장비를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심창섭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첨단장비 PD caleb92@kei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