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구글에 축척 1대5000의 고정밀지도 반출을 허용하면서 보안을 우선시한다던 기존 입장을 선회했다. 국가전략자산으로 간주돼야 할 고정밀지도 데이터를 통상 논리로 쉽게 개방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향후 구글 뿐만 아니라 글로벌 빅테크가 연쇄적으로 고정밀지도 데이터를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구글에 축척 1대5000의 고정밀지도 반출을 허가하면서 엄격한 보안 준수를 전제 조건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련 업계는 미국의 통상 압박에 밀려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비관세장벽의 하나로 고정밀지도를 지목하고, 슈퍼 301조로 불리는 '무역법 301조'에 따른 관세 부과까지 예고하자 압박을 느꼈다는 분석이다. 이를 보여주듯 고정밀지도 반출 결정 후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서 환영 멘트가 곧장 나오기도 했다.
정부의 태도 변화는 최근 한 달 새 이뤄진 것으로 진단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에 구글의 고정밀지도 반출 결정을 유보할 때만해도 구글에 안보시설 가림 처리, 좌표 노출 금지, 국내 데이터센터 설립 등 조건을 담은 보완 신청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2016년 이후 우리 정부가 고정밀지도 반출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지속 요구했던 사안이다.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은 올해 초까지도 이어졌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월 기자간담회에서 “지도 반출의 핵심은 안보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7일 협의체에서는 제한적 조건을 달았지만 끝내 고정밀지도 반출을 허가했다.
공간정보 전문가와 플랫폼 업계는 국가전략자산으로 간주해야 할 축척 1대5000의 고정밀지도 데이터를 통상 논리에 의해 쉽게 반출했다고 지적했다. 축척 1대5000의 고정밀지도는 국토의 공간정보와 국가안보가 결합된 고도의 인프라로 자율주행, 도심항공교통(UAM) 등 첨단 공간정보 산업의 핵심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다. 희소한 고정밀지도 데이터는 국내 공간정보 산업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하지만 해외 빅테크에 고정밀지도를 반출하면서 국내 산업 경쟁력도 시험받을 위기다.
미 정부가 나서 압박할 정도로 고정밀지도는 첨단 산업에 있어 중요한 데이터지만, 반대로 우리 정부는 지켜야할 핵심 데이터가 아니라 다른 압박을 피하기 위한 용도로 활용한 셈이다. 그것도 갑작스레 태도를 바꿔 내줬다는 점이 업계가 충격을 받은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고정밀지도는 인공지능(AI)이 학습하기에 좋은 고품질 데이터로서 자율주행, 물류 등 산업 전반의 기반이 되는 핵심 자원”이라면서 “고정밀지도 반출은 안보를 넘어 국가자산 반출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해외 주요국이 고정밀지도를 전략자산으로 분류하고 통제하는 것과도 대비된다. 이스라엘은 미국 기업의 자국 위성 영상 수집을 금지한다. 중국은 외국 기업이 접근할 수 없는 '자국 전용 지도'를 사용한다.
정부가 국가전략자산으로 여겨야할 핵심 데이터를 한번 내준 이상 인식 자체가 변하지 않는다면 이번 반출을 계기로 또 다른 글로벌 빅테크가 구글의 전략을 모방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자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진다.
안종욱 대한공간정보학회장은 “지도 데이터를 구글에 이어 중국까지 가져가게 되면 결국은 자율주행이나 UAM, 로봇 등 국내 데이터와 기술로 발전시킬 수 있는 분야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 현대인 기자 modernma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