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투명한 재앙' 물류센터 '비닐 랩' 걷어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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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구 주영피앤에스 대표

물류센터 컨베이어 벨트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지게차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풍경 속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택배 상자보다 더 많이, 더 넓게 현장을 뒤덮고 있는 것은 바로 '스트레치 필름', 일명 비닐 랩이다.

파레트 위에 쌓인 화물이 흔들리지 않도록 감싸는 이 투명 필름은 현대 물류를 지탱하는 필수 포장재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투명 필름은 우리 생태계를 가장 불투명하게 만드는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다.

국내 물류 및 운송 산업 분야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치 필름 폐기물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통계에 따르면 국내 폴리에틸렌(PE) 시장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수거량은 연간 약 80만톤에 달한다. 이 중 상당 부분이 물류 현장에서 사용되는 스트레치 필름이다.

전 세계 물류 현장 스트레치 필름은 단순 소모품 수준을 넘었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스트레치 필름 소비량은 610만톤이다. 이 중 물류 및 운송 분야에서만 약 450만톤을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 필름들이 대부분 일회용이라는 점이다. 화물이 물류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커터칼 한 번에 잘려 나간다. 한 번 늘어난 필름은 탄성을 잃어 재사용이 불가능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낮은 재활용률이다. 국내 PE 폐기물 중 재생 수지로 다시 활용되는 양은 30만톤 수준에 불과하다. 유럽 등 선진국 기준(에너지 회수 제외)으로 따져본다면 실질적인 재활용률은 20%대까지 떨어진다. 재활용품의 경우 1톤 생산시 약 1.4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돼 또 다른 환경오염이 되고 있다.

유럽은 이미 제도적 전환에 나섰다. 유럽연합(EU)은 2025년부터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을 시행하며, 포장재를 '발생 자체를 줄여야 할 대상'으로 규정했다. 단순히 재활용 비율을 높이는 것을 넘어, 반복 사용이 가능한 포장 시스템 확대와 과대포장 억제를 법적 의무로 삼은 것이다. 이로 인해 유럽의 물류·유통 기업들은 다회용·리유저블 포장 전환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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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기술적으로 이미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선도 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다회용 파레트 밴드'나 '리유저블 벨트'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가전 물류 현장에 재사용이 가능한 파레트 커버를 도입해 연간 약 40톤 이상의 비닐 쓰레기 감축 효과를 거두고 있다.

CJ대한통운 역시 폐비닐을 수거해 재생 스트레치 필름으로 재탄생시키는 자원 순환 모델을 구축했다. 택배전문기업 일양로지스는 필자가 대표로 있는 주영피엔에스의 친환경 파레트 포장재 '에코번들'을 지난 2년간 사용해 연평균 폐기물을 97%나 줄이는 효과를 봤다.

해외 기업들은 비닐 없는 물류를 구현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영국 로드호그는 비닐랩 대신 파레트 위에 튼튼한 뚜껑을 덮고 내장된 벨트로 고정하는 파레트 리드 방식을 쓴다. 수백번 재사용 가능해 비용도 크게 줄였다. 중국 JD로지스틱스는 비닐랩 대신 그린 스트림 프로젝트를 통해 다회용 상자와 벨트를 도입했다.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인식'이다. 그동안 물류 현장에서 환경은 '비용'의 영역이었다. “남들도 다 랩 쓰는데” “싸고 편한데 굳이 왜”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친환경은 선택이 아닌 생존이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기업의 성적표가 된 2026년 현재, 물류 기업들이 겉으로는 '그린 물류'를 외치면서 현장에서 비닐 랩을 쏟아낸다면 그것은 명백한 '그린워싱'이다. 경영진부터 현장 작업자까지 스트레치 필름을 단순한 소모품이 아닌 '지구에 지우는 빚'으로 인식하는 대전환이 필요하다.

심각한 환경오염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투명한 굴레를 걷어내고, 진짜 '깨끗한 물류'로 나아가야 한다. 정부의 제도적 지원과 관심, 친환경 제품개발을 위한 기업의 과감한 투자, 물류 및 운송산업 현장의 인식 변화가 삼박자를 이룰 때 비닐 쓰레기 없는 깨끗한 물류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

박정구 주영피앤에스 대표 jooyeong@jooyeo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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