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는 순서가 있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 시급한데 중요하지 않은 일, 급하지 않으면서 중요하지 않은 일. 이를 기준으로 우리는 통상 일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이런 기준에서 우리는 일을 처리할 때는 시급하고 중요한 일부터 처리한다. 대부분 그렇다.
지난달 30일 농협, 신한, 우리, KEB하나, 기업, 국민, 부산, 제주, 전북, 경남 등 10개 은행이 오픈뱅킹 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 12월 18일부터는 나머지 은행이나 핀테크기업까지 참여하는 오픈뱅킹이 전면 시행된다.
오픈뱅킹에서는 금융 소비자가 하나의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자신의 모든 은행계좌를 관리할 수 있다.
금융 당국은 오픈뱅킹을 통해 은행과 핀테크 기업 간 경쟁과 혁신이 일어나 금융 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지급결제 시장의 효율성이 커져 거래 전반의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시범 서비스에 참여한 일부 시중은행의 오픈뱅킹 서비스에서는 타행 계좌에서 타행계좌로의 송금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픈뱅킹 아래에서는 일부 은행에서 발생한 송금 오류와 자금세탁방지 부분에 대한 정확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무리하게 서비스 개시 일정을 잡았다는 지적도 업계에서 나온다.
오픈뱅킹은 금융 당국이나 금융권, 금융소비자 모두의 기대처럼 금융 혁신의 전환점이 될 중요한 시작으로 보고 있다.
금융 당국의 기대처럼 경쟁과 혁신, 금융 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긍정적 변화가 기대된다. 이를 놓고 볼 때 오픈뱅킹은 일의 우선순위 기준에서 시급하면서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잊고 있거나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 누구에게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냐는 문제다.
금융이나 은행 입장에서는 중요하고 시급할 수도 있는데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소비자에게는 미래에 다가올 편리나 혜택보다 현재 내 재산이 어떻게 보호되고 처리되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시행 초기 부각되고 있는 보안이나 오류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실제 일부 서비스 시행을 미루고 있는 시중은행들은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 자금세탁방지, 착오송금 반환 및 송금 오류 발생 시 정정 프로세스 등의 미비점을 거론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이들 은행만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전면 서비스에 나선 은행들도 부족하지만 일단 시작한다는 입장이다.
일의 효율을 위해서는 시한을 정해 두고 이에 맞춰 진행한다. 특히 정부나 기업 등 목표 달성이 중요한 곳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시급함이나 중요도는 기준이나 정도가 다를 수 있다.
오픈뱅킹을 접하는 금융 당국이나 시중은행과 금융 소비자 관점이 다를 수 있다. 더욱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의 부족함은 자칫 위험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오픈뱅킹 서비스를 위해 그동안 노력해 온 금융 당국과 시중은행 관계자 등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낸다. 뒤처진 우리 금융 산업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에도 충분히 공감한다.
물론 일단 시작하고 수정해 갈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어떤 일은 처음 시작부터 완벽을 기해야 하는 일도 있다. 오픈뱅킹은 후자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금융 소비자의 재산, 금융 당국이나 은행의 신뢰·안정성과 직결되는 문제라면 정해진 시한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