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계절이다. 이달 7일부터 2019년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이어졌다. 지난 7일 생리의학상을 필두로 8일 물리학상, 9일 화학상, 10일 문학상, 11일 평화상과 마지막으로 14일 경제학상 수상자까지 마무리됐다.
실상 올해의 관심은 평화상이었다고 하지만 우리의 경우 첫 사흘 동안 발표된 과학 부문에 기대와 관심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결과부터 말하면 우리 과학자는 수상자에 없었고, 그동안 우리의 기대가 커진 만큼 아쉬움도 여느 해보다 좀 길었다.
거기다 괜한 시샘인지는 모르겠지만 화학상 수상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일본의 요시노 아키라 메이조대 교수가 선정된 것도 한몫했다. 24번째 수상자인 점도 그렇지만 이른바 샐러리맨 출신 수상자인 그를 보면서 2002년 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 역시 시미즈제작소 소속이라는 점을 떠올렸다.
대략 과학상 수상자 발표가 마무리된 9일 즈음 언론은 우리 과학계의 수상 가능성은 어디쯤 와 있고, 앞으로의 정책 방향은 무엇인지를 다뤘다. 당연이 으뜸 제안은 노벨상급 연구 적극 지원이다.
이런 생각은 마침 얼마 전 한 기초과학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내놓은 보고서에서도 나타난다. 보고서는 기초과학 육성을 위한 세 가지 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첫째는 선도 과학자와 대형 프로젝트에 과감한 투자, 둘째는 지속된 기초과학 안정 육성, 셋째는 세계 기초과학 중심부와의 활발한 공동 연구와 협력 네트워크 강화다. 물론 노벨상에 근접하려면 우리 우수 연구를 널리 알리고 인지도를 높일 필요도 있다.
정부는 비록 노벨상이 가시화한 목표로 명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기대감을 안고 지난 1999년에 21세기 프런티어 사업을 시작했다. 그 후속으로 글로벌 프런티어 사업을 전개하고, 2011년에 기초과학연구원(IBS)과 외국 석학이 참여하는 연구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연구자가 과학 난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처럼 작게는 우리 과학기술 위상을 높이고 궁극으로는 노벨상을 목표로 최고 과학자가 노벨상급 연구를 추진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자 정책 목표로 바람직한가 하는 질문에 즉답하기가 주저되는 것은 왜일까를 되묻게 된다.
이것은 2011년 이후 추진해 온 기초과학연구원과 대형 연구단, 지난해에 새로 출범한 선도연구센터(PRC)의 운영, 더욱이 이런 대형 연구에 예산이 집중되면서 다른 기초연구가 약화될 수 있다는 재정 관점의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 기초연구 수준을 긴 안목으로 높여 간다는 시각에서 보면 굳이 노벨상급 주제나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고 있더라도 매일 하는 연구가 창의성과 독창성을 띤 결과로 인도하는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따져 보게 된다.
노벨상의 계절에 노벨상급 연구를 체계화해서 추진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이 생각에 매몰되지 않을 때 한 번의 첫 노벨상이 아니라 그 뒤에 또 그 뒤에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기대와 총아에서 거리가 멀기만 하던 우리 과학자와 기술자가 호명되는 그런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언론이 전하는 요시노 교수의 좌우명은 우리를 생각으로 이끈다. “쓸데없는 일을 많이 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는다.” 일반 상식과는 다른 이 조언은 한번 생각해 봄 직하다. 과거 노벨상을 받은 어느 노 과학자가 우리 언론에 했다는 “꾸준한 투자와 지원 외에 지름길은 없습니다”는 조언도 왠지 여운을 남긴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단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