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도·폐업한 신용카드 단말기 제조사의 제품에 한해 보안 인증을 수년간 유예해 주는 방안을 추진한다. 시중에 유통된 판매시점관리(POS) 단말기, 신용카드결제단말기(CAT), 근거리무선통신(NFC) 단말기 등 상당수 제품들이 이미 폐업한 제조사가 공급함으로써 보안 인증 자체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신용카드단말기 보안 갱신 인증제를 조만간 확정, 시행할 예정이다.
4일 금융위·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내년 7월에 정부의 보안 인증을 받은 신용카드단말기 인증 기한이 만료된다.
2015년 7월 정부는 신용카드단말기 등록제를 도입했다. 결제단말기에서 해킹, 위변조 등 사고가 증가하자 정부가 엄격한 보안 요건을 정해 이를 통과한 제품만 시중에 유통하게 했다.
가맹점에서 사용하는 모든 카드결제 단말기는 금융위와 여신금융협회가 제정한 단말기 보안 인증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보안 인증을 받지 못한 제품은 여신전문금융업법에 의거, 불법 단말기로 분류되고, 과태료 등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
현재까지 2219개의 모델 단말기가 등록돼 사용되고 있다. 보안 인증 기한은 5년으로, 350여종이 내년 7월이면 인증 기한이 만료된다. 이들 제품은 내년 7월 이전에 재인증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가맹점에 공급된 결제단말기 가운데 일부가 폐업한 제조사의 제품이 뒤섞여 유통됐다는 것이다. 중국 저가 제품 난립 등으로 국내 결제단말기 제조사가 문을 닫거나 중국 기업에 흡수 합병됐다. 대표 제조사인 대합은 폐업했고, 광우는 중국 기업에 합병되는 등 결제단말기 시장은 외산 일색으로 점령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폐업한 기업 단말기는 재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이를 추진할 주체가 사라진 셈이다.
정부는 폐업한 기업 단말기에 한해서 여신금융협회가 지정한 제품에 대해 1년 동안 인증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밴사가 폐업한 기업을 대신해서 갱신 인증을 신청하면 2년 동안 가맹점에서 쓸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총 다섯 번의 연장이 가능하다. 갱신 인증 비용 수수료를 여신협회 공익기금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엄격하게 보안 요건을 강화해 놓고 스스로 여전법을 위배하는 정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많은 수수료를 내고 인증을 받은 밴사, 대형 가맹점과도 형평성에 어긋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가맹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도, 폐업한 제조사 단말기에 한해 인증 유예를 추진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내년 재승인 이전에 충분히 준비해서 시장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