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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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론(正統論)이란 역사를 보는 관점이다. 가장 유명한 정통 논쟁으로는 위·오·촉으로 분립된 중국 삼국시대를 들 수 있다. 통(統)은 군주를 말하며, 정(正)은 군주가 단 한 명이라는 뜻이다. 정통론에 입각하면 삼국 가운데 하나만 진짜고 나머지 왕조는 가짜가 된다.

정사 삼국지를 쓴 진수는 조조의 위(魏)나라만 황제의 칭호를 사용, 위정통론에 섰다. 반면에 의리와 명분을 중시했던 주희는 촉(蜀)을 정통으로 받들었다. '삼국지연의'는 주희의 사관에 입각해 쓴 소설이다.

정통론이 중요한 이유는 국가 권력에 대해 국민이 그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하고, 왕조시대에는 자진해서 복종하는 기제였기 때문이다. 명·청이 교체된 17~18세기 조선의 역사 서술에서도 정통론이 등장한다. 안정복이 우리 역사가 단군조선→기자조선→마한→삼국시대무통→통일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특이한 것은 의리와 명분에 입각해서 기자조선을 탈취한 위만조선을 정통에 넣지 않고 기자조선의 준왕이 남하해서 세운 마한을 정통으로 삼은 점이다. 이러한 정통론은 성리학·중세·왕조 중심이기 때문에 근대 역사관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분단국가인 우리 입장에서는 '민족 정통론' 관점에서 도외시할 수 없다.

최근 10여년 동안 우리 사회는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 또는 법통성을 놓고 보수와 진보로 논쟁을 벌였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건국됐다는 보수 측의 건국절 논란이다. 조선→대한제국→대한민국임시정부→대한민국으로 이어진다는 상해 임정 정통론과의 충돌이 있다.

현행 헌법은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규정한다. 대한민국이 상해 임정의 법통을 계승했음을 명문화했다.

보수 측은 상해 임정이 대한제국을 법통으로 계승했다고 볼 수 없으며, 국제법에 의해 인정받는 망명정부도 아닌 '사실상의 정부' 또는 '사실상의 당국'이지만 조선→대한제국→대한민국임시정부→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정통성은 계승한다고 주장했다. '1948년 건국'을 강조하다 보니 '사실상의 당국'이 민족 정통성은 승계했다는 모순되는 입장을 내세웠다.

진보 측에서는 전통으로 상해 임정의 정통성을 부인했지만 보수 측에 의한 건국절 논란 시기에는 임정 법통성을 인정 내지 묵인했다. 그러나 최근 언론은 진보역사학자가 학술대회를 열어서 “임정 법통론은 역사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해방 이후 수립된 남한 단독 정부가 정통을 잇는다는 것도 진실에 배치된다”고 보도했다. 언론은 또 “임정법통론 역시 남한의 배타적 정통성을 주장하는 체제 경쟁 논리가 됐다”고 했다.

보도대로라면 진보 측 주장은 상해 임정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대한민국만의 정통성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 측 주장은 모호하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정통성이 좌파 무력 투쟁 또는 김일성 일가의 항일투쟁→북한으로 이어진다는 것인지 안정복 '삼국무통'처럼 남북한 모두 정통성이 없고 나중에 통일국가로 이어진다는 것인지, 이것도 아니면 우리 역사를 정통론으로 보지 않겠다는 입장인지 불분명하다.

헌법에 규정된 상해 임정의 법통성은 임정이 우리 민족의 정통성을 이어받았고, 다시 대한민국이 임정의 법통을 계승해서 외세가 아닌 자주독립 정신이라는 사상을 토대로 하여 그 위에 건설됐다는 의미다. 분단 현실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바탕이 된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법통 계승의 의미를 규명하고 논쟁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의 자의적 해석을 통해 임정을 폄훼하고 새로운 역사 관점을 내세우는 것은 헌법 개정 권력자인 국민의 결단에 반하는 것이다.

홍일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자유한국당 의원) 2008hi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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