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회장님, 정말 이대로 괜찮겠습니까?"

글로벌 반도체·디스플레이 경쟁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중국이 '중국 제조2025' 정책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를 비롯한 첨단 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이면서 미국, 한국 등 기존 선두 국가를 위협하는 존재로 급부상한 게 주원인이다. 이전에는 개별 기업이 선두를 다투는 경쟁을 벌였다면 이제는 자국 산업을 육성하고 지키려는 '국가 생존경쟁' 양상으로 패러다임이 변화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중국의 이른바 '짝퉁' 제품이나 기술 모방에 코웃음을 쳤다. 제 아무리 흉내 내도 우리를 추격하기 어렵다는 자신감이 바탕이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이 무역 불균형을 무기로 삼아 자국 기술과 산업 보호에 적극 나설 정도로 중국의 존재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중국이 조만간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산업 경쟁 패러다임이 바뀌었지만 우리나라 주력 산업 곳곳에서는 30년 이상 해묵은 '암묵적 관행'을 여전히 답습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전자 산업이다. 생태계는 여전히 '삼성 협력사'와 'LG 협력사'로 양분됐다.

특히 첨단 기술의 첨병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은 한국을 위협하는 중국에 수출을 허용하면서 정작 국내 경쟁사와의 거래는 금하는 문화가 여전히 지배한다. 그 어디에도 공식적으로 거래를 금지한 규정이 없지만 대기업 구매팀의 보수적인 기조는 협력사에는 가장 강력한 규제로 작용한다.

이제 대대적인 '판 뒤엎기'가 필요하다. '세계 1·2위를 다투는 한국 기업이 핵심 협력사를 교류하면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전방 기업인 삼성, LG, SK하이닉스도 전향적으로 빗장을 걷고 문을 열어야 한다. 담합이 아니라 상대 경쟁력을 인정하고 상생할 궁리를 해야 할 시기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LG디스플레이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사용한 OLED TV를 만들고, LG전자가 삼성디스플레이의 폴더블 OLED를 구매해 폴더블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것이 더 이상 업계 희망사항에 그쳐선 안 된다는 뜻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삼성·LG 내부에서는 임원진 중심으로 이런 파격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회장님'의 결단이 아니고서야 감히 누가 이런 제안을 할 수 있을까.

최근 기자가 만난 한 삼성 계열사 임원은 “내부에서 느끼는 위기의식이 크다”면서 “삼성·LG가 정말로 회사와 국가 산업 미래를 걱정한다면 상대의 기술 경쟁력을 인정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 임원은 공정하게 경쟁하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을 인정하고 구매, 투자 등 다양한 상생 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중국에 휘둘리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도 강조했다.

이제 10여년 동안 고착화된 문제를 바로잡고 업계의 판을 뒤엎는 변화가 필요하다. 전혀 다른 관점에서 생존 전략을 짜야 한다. 생존의 문제를 앞에 두고 묻고 싶다. “회장님, 정말 이대로 괜찮겠습니까?”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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