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채굴의 경제학, 어디까지 아시나요?

비트코인 열풍과 함께 새롭게 등장한 단어가 있다. 바로 '채굴'이다.

채굴이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이용자가 시스템 운영에 기여하는 대가로 암호화폐를 얻는 행위를 말한다. 일정한 노동력(컴퓨팅 파워)을 제공하고, 그만큼 보상(코인)을 얻어갈 수 있다는 데서 채굴로 불리기 시작했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채굴은 사전적 의미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기존 중앙은행이 기계를 통해 동전과 지폐를 찍어냈다면, 블록체인 세계에서는 누구나 채굴을 통해 암호화폐를 직접 만들고 유통에 참여할 수 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완벽하게 중앙 권력이 배제된, 공평한 금융을 추구하는 행위다. 동시에 암호화폐 시장의 흐름을 결정하는 방향타의 역할도 한다.

고성능 장비로 무장한 전문 채굴 업체들의 등장은 암호화폐 시장에 큰 파장을 가져왔다. 채굴 업자들의 채굴 수익성에 따라 비트코인의 가격이 움직이는 '웩더독(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효과도 나타났다. 암호화폐 채굴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 중 하나로 꼽힌다. 기술 측면에서 중앙처리장치(CPU)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 주문형 반도체(ASIC)로 진화하고 있다. 방대한 수요를 바탕으로 전문 채굴장, 채굴 임대 사업 등 비즈니스 차원의 성장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사토시, CPU 채굴기로 첫 BTC 블록 생성

2009년 1월 3일, 비트코인 창시자인 나카모토 사토시가 평범한 개인 컴퓨터에 탑재된 CPU를 통해 첫 비트코인을 채굴했다. 당시만 해도 비트코인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일부 개발자들이 투자 개념보다는 재미로 채굴에 참여했다. 당시 참여자들은 듀얼 코어 CPU가 탑재된 개인용 컴퓨터로 비트코인을 채굴해 하루에 약 5달러 정도를 벌 수 있었다.

채굴 붐이 시작된 건 2011년 4월 비트코인 가격이 처음으로 10달러를 돌파하면서다. 채굴 참여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비트코인의 채굴 난도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더 이상 가정용 컴퓨터 성능으로는 채굴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비트코인은 채굴 참여자들이 많아질수록 채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코인의 양이 감소하는 구조다. 이에 채굴 참여자들은 CPU 대신 고성능 그래픽 처리 장치 GPU로 눈을 돌렸다. 한 번에 다수의 연산을 처리하기 위해 그래픽 카드의 GPU를 병렬로 연결, 채굴 속도를 대폭 향상시킨 것이다. GPU가 대세 채굴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고성능 게이밍 그래픽카드는 비트코인 채굴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2015~2016년 비트코인 열풍과 함께 그래픽 카드 품귀현상이 나타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2010년 12월에는 첫 비트코인 채굴 풀인 '슬러시 풀(Slush Pool)'이 등장했다. 채굴 풀이란 대량의 컴퓨터 장비를 구축, 영리 목적으로 대규모 비트코인 채굴에 나서는 업체를 말한다. 이들은 동시에 개인 채굴자의 컴퓨팅 파워를 임대해 채굴에 나서고 수익을 돌려주는 크라우드 채굴 방식도 도입했다.

체코 프라하를 기반으로 한 슬러시 풀이 설립 이후 최근까지 채굴한 비트코인 가치를 따지면, 2017년 말 기준으로 수 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채굴의 전문화는 “컴퓨터만 있다면 누구나 공평하게 채굴을 할 수 있다”는 나카모토 사토시의 초기 구상을 무너뜨렸다. 사토시가 처음 비트코인을 채굴한 가정용 컴퓨터는 더 이상 암호화폐 채굴에 적합한 장비가 아니다. 사토시는 2011년 사람들이 GPU를 채굴에 사용하기 시작하자 “GPU 기반 채굴 행위를 최대한 미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토시에게 비트코인은 누구나 쉽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평등하고 투명한 금융 시스템이었다.

◇ASIC의 등장, 전문 채굴 시대의 시작

2012년 12월 미국계 채굴 제조업체 버터플라이랩이 첫 비트코인 채굴 전용 ASIC(Application Specific Integrated Circuit)을 출시했다. 사전 예약으로만 500만달러 매출을 기록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당시 예약 판매했던 기본 모델 가격은 270달러. 3일 동안 비트코인을 채굴하면 원금을 뽑고도 남는 수준이었다. ASIC의 등장에는 2012년 비트코인 첫 '반감기'가 영향을 미쳤다. 반감기란 채굴할 때 얻을 수 있는 비트코인의 양이 절반으로 감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10분에 50개의 비트코인이 생성됐지만, 최근 생성량은 12.5개에 불과하다. 이는 나카모토 사토시가 비트코인 가치 하락을 방지하기 설정한 일종의 가격 방어 장치다. 반감기는 비트코인 공급 감소로 인한 가격 상승 전망을 확산시켰고, 이는 채굴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다.

이 기간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투입된 컴퓨팅 파워가 매주 10~20% 이상씩 증가했다. 그리고 2013년 현재 세계 최대 암호화폐 채굴기 제조업체로 자리 매김한 비트메인이 첫 채굴 장비인 1세대 '앤트마이너'를 출시했다. 암호화폐 업계의 공룡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세대 앤트마이너는 110㎚ ASIC 칩 내장, 컴퓨팅 파워 180GH/s(1GH/S는 초당 10억번 연산) 수준으로 당시 경쟁 업체를 압도했다.

대형 채굴 장비 업체들의 경쟁 속에서 ASIC 장비의 성능은 가파르게 향상됐다. 주요 채굴 장비의 컴퓨팅 파워 단위가 GH/S에서 TH/S(1TH/S는 초당 1조번 연산)로 뛰어오르며, 채굴 업계 '테라(T)급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ASIC의 등장은 비트코인 역사에 있어 상당한 의미가 있다. 비트코인 채굴이 하나의 산업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3년 이후 거대 자본의 진출이 이어지면서 전문화된 대형 채굴 풀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2013년 5월에는 오늘날 세계 3대 암호화폐 채굴 풀로 성장하는 중국계 마이닝 업체 F2풀이 탄생했다. F2풀은 당시 비트코인 외에도 주요 암호화폐 중 하나인 라이트코인 채굴 점유율 30%를 장악하는 등 채굴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시켰다. 현재 F2풀은 전 세계 10만 이상 채굴자가 참여하는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채굴 장비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한 비트메인 역시 2014년 11월 14일 크라우드 채굴 풀인 앤트풀을 출범했다. 당시 앤트풀은 채굴 시작과 함께 컴퓨팅 파워 기준 세계 3위에 올랐으며, 불과 4개월 만에 1위로 등극했다.

◇대형 채굴 업체, 단순 채굴자 넘어 '기술 주도 세력' 부상

컴퓨팅 파워 전쟁을 통해 암호화폐 업계의 '룰 세터(rule-setter, 규칙을 정하는 사람)'로 자리매김한 채굴 업체들은 기술 주도 세력으로 부상했다.

2017년 비트코인의 용량 확대 방안을 놓고 비트코인 개발 진영과 대형 채굴 업체 간 주도권 싸움이 발생했다. 중국계 대형 채굴자를 중심으로 비트코인의 블록크기를 1MB에서 2MB로 확대하자는 요구가 거세졌다. 용량이 증가하면 거래가 빨라지고 이에 따라 채굴자는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비트코인 개발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트메인의 우지한 창업자를 중심으로 비트코인에서 비트코인캐시를 분리하는 하드포크가 2017년 8월 진행됐다. 비트코인캐시는 비트코인의 대안으로 받아들여지며 메이저 코인으로 자리매김했다. BCH 하드포크 사건은 대형 채굴업체가 단순 채굴자를 넘어, 비트코인 근본 기술 개선에 개입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영향력이 커졌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2018년 11월에는 비트코인캐시가 다시 비트코인ABC와 비트코인SV 두 개 진영으로 나눠졌다. 전자는 비트코인캐시에 대한 기술적 개선을, 후자는 비트코인 초기 구상으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타협에 실패한 두 진영은 각자의 컴퓨팅 파워를 동원해 비트코인캐시 블록체인을 장악하려는 경쟁을 벌였으나, 결국 다시 두개의 코인으로 분리되었다.

두 채굴 풀 간의 전쟁은 비트코인 가격의 급락으로 이어졌다. 블록체인의 기본 개념인 채굴이 특정 업체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동시에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사용될 수 있음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물론 채굴의 전문화가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2017년 중국계 채굴풀 비아BTC가 클라우드 마이닝 서비스를 정식으로 선보였다. 클라우드 마이닝이란 이용자가 직접 채굴 장비를 구입하지 않고 컴퓨팅 파워를 임대, 채굴된 코인을 분배 받는 서비스다. 일정한 비용만 지불하면 자신이 원하는 코인을 원하는 만큼 채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채굴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암호화폐 가격 급락, 채굴 업체 줄도산

지난해 말 비트코인의 4500달러 선이 무너지면서 채굴 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 채굴에 필요한 비용은 나날이 상승한 반면,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하면서 채산성이 급격하게 위축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이 5000~6000달러 선에 머물러야 체굴 업체들의 수지가 맞는다고 보고 있다. 대형 채굴풀 F2풀이 앤트마이너 S7, T9, 아발론 A741 등 주류 채굴 장비를 내다 팔기 시작했다. 한때 암시장에서 3~4배의 웃돈을 주고 사야했던 채굴 장비들이 떨이 신세로 전락했다.

마오스항 F2풀 창업자는 암호화폐 전문 미디어 코인데스크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 가격 폭락으로 이달 들어서 60만~80만개의 채굴 업자들이 운영을 중단했다”며 “노후 장비로는 채산성이 안 나온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채굴 업체 채산성을 기준으로 비트코인의 반등을 예측하기도 한다. 암호화폐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장악하고 있는 대형 채굴 업체들이 자신의 수익성을 보장하기 위해 가격 하락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다.

이와 관련 블록체인 리서치 전문 업체 팩쉴드는 “실제로 일부 대형 채굴 풀들은 암호화폐 공급량을 줄여 가격을 지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며 “채굴자들이 암호화폐의 가치를 결정하는 웩더독 현상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코인니스 business@coinn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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