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풍경이 기존 기업과 사뭇 달랐다. 대표실이 없다. 근무시간과 출퇴근, 복장은 자율이다. 직원 절반이 대표보다 연봉이 많다. 병원도 아닌데 전문의(專門醫)가 6명이다. 소도시 종합병원 수준이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세계 인공지능(AI) 100대 스타트업'에 들어간 루닛 사무실 모습이다. 백승욱 대표를 서울 강남구 역삼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약속 시간에 맞춰 출근하는 기분으로 루닛으로 갔더니 텅 빈 사무실을 백 대표 혼자 지키고 있었다.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직원들은 출근 전이었다. 그가 직접 타온 냉커피를 마시며 1시간 반 동안 AI 기반 의료영상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직원들이 안 보인다.
▲아직 출근 전이다. 대략 10시경 출근한다. 자율근무제여서 직원들이 알아서 출근하고 퇴근한다. 우리 회사는 어떤 일보다 직원을 최우선한다.
-재택근무도 하나.
▲그렇다. 사무실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다. 본인 의사에 따라 카페에서도 일한다.(10시경부터 직원들이 하나 둘 출근했다. 일부는 반바지에 백팩을 메고 있었다.)
-언제 창업했나.
▲2013년 8월에 창업했다. KAIST 친구 6명이 창업했다. 준비는 2010년부터 했다.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팀 빌딩(team building)'이다. 6명이 시작했다. 지금은 직원이 50명이다. 직원 중 절반이 대표보다 봉급이 많다. 모두 최고 인재들이다.
-전공이 의료분야인가.
▲아니다. 전자공학도다. 회로설계를 했다. 창업을 안했으면 졸업 후 국내 반도체회사나 아니면 해외로 나갔을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창업이 목표였다. 대학 재학 중 휴학하고 동아리 선배가 창업한 회사인 '에빅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그 때 많이 배웠다. 스스로 연구 목표를 설정하고 제품을 생산해 판매했다. 모든 게 자율이었고 재미있었다. 당시 개발한 제품이 컴퓨터 원격 제어 소프트웨어였다.
-한국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세계 AI 100대 스타트업'에 들어갔는데.
▲100대 AI 스타트업에는 세계 AI 분야를 다 포함해 선정한 것이다. 루닛은 AI 의료영상 판독 기술을 인정받아 100대 기업에 뽑혔다. 한국 유일이다.
-의료영상 판독 분야에서 루닛 기술력은 어느 정도인가.
▲세계 '빅3'에 해당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각각 한 개씩 스타트업이 있다. 판독 기술력은 루닛이 가장 앞섰다고 자신한다.
-연구개발 분야는.
▲크게 두 분야다. 하나는 영상의학 분야고 다른 하나는 병리학 분야다. 영상의학 분야 제품은 흉부 엑스레이를 비롯해 폐암, 폐렴, 기흉 등 다양한 폐질환을 판독한다. 더 확장하면 심장 비대증, 골절 등도 판독이 가능하다. 병리학은 병에 걸린 조직 형태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인데 쉽게 말해 조직 검사다. 지금은 인체 이상을 발견하면 조직을 떼어내 현미경으로 검사한다. 병리학 분야에 AI가 기여할 점이 많다. 갈 길이 멀지만 두 분야 연구개발에 같은 비중을 두고 있다.
-개발한 제품은 어떤 게 있나.
▲첫 개발품은 영상의학 분야 제품이다. 흉부X선 판독 시스템인 '루닛인사이트'다. 루닛 인사이트 확장 버전도 개발했다. 유방 촬영술로 유방암을 찾는다. 글로벌 경쟁력이 있다.
-기존 장비와 차이점은 무엇인가.
▲일부에서 효율성을 말하던데 가장 중요한 게 정확도다. 생명을 다루는 만큼 정확도가 핵심이다. 임상시험 결과 AI를 사용하면 정확도가 높아졌다.
-식약처 의료기기 승인은 신청했나.
▲루닛 인사이트는 지난해 승인을 신청해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이다. 올 가을쯤 인허가 승인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확장버전도 승인을 신청했고 곧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식약처 인허가 승인에 이어 미국 FDA나 유럽 CE 인증도 신청할 계획이다.
-제품을 언제 출시하나.
▲루닛인사이트는 승인이 나면 곧바로 출시한다. 확장버전은 내년부터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임상시험 대상은 몇 명 사례를 사용했나.
▲200명 사례를 사용했다. 의사가 판독한 내용을 AI가 판독하고 이를 토대로 최종 판독해 변화를 측정했다. 진단 종합도에서 정확도가 몇 %나 올라갔는지를 시험한 것이다.
-정확도는 얼마로 나왔나.
-임상시험 결과 폐암은 검출 X레이를 이용해 전문의가 진단한 경우 80%였다. 이걸 AI 제품으로 판독한 결과 83%로 3% 높았다.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는 67%였고 AI는 81.7%였다. 폐렴과 결핵, 기흉 경우 비전문의가 82%, AI는 90.5%였다. 전문의는 90.9%, AI는 95.2%였다. 재미있는 건 AI 단독 진단시 98%로 나타났다. AI 도움을 받으면 정확도가 올라갔다.
-국내 협업하는 병원은 몇 곳인가.
▲서울대병원과 연세세브란스병원, 삼성병원, 서울아산병원 국내 빅4를 포함해 많은 병원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창업 초기 미국에 가서 하버드대학병원이나 메사추세츠종합병원과 협력방법을 모색했는 데 데이터는 많지만 효율적으로 일하기가 어려웠다. 서울은 대형병원이 다 몰려 있다. 연구개발 환경이 서울처럼 좋은 곳이 없다. 주로 4대 병원과 협력을 한다.
-연구인력은 몇 명인가.
▲AI 연구인력은 15명이다. 제품을 개발해도 사용하는 건 의료진이다. 루닛에는 전문의들이 직원으로 근무한다. 스타트업에 전문의가 직원으로 근무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전문의가 몇 명인가.
▲모두 6명이다. 영상의학과 3명, 병리과 전문의 2명, 가정의학과전문의 1명이다. 대학 병원에 근무하다 온 전문의도 있다. 총괄은 서범석 이사가 한다. 서 이사는 KAIST 동기인데 생명공학을 전공하다 서울대 의대에 편입해 가장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획득했다. 내가 의료분야 문외한이어서 처음에는 컨설팅을 해주다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은 사용자 입장에서 제품 기획 단계부터 개발과정에 깊숙이 관여한다.
-시장규모를 얼마로 추정하나.
▲영상진단 분야 시장규모는 2~3조원으로 추정한다.
-매출은 언제부터 계획하나.
▲내년부터 매출이 소폭 발생할 것으로 본다. 제품을 내놔도 급격한 매출 확대를 기대하긴 어렵다.
-투자는 얼마나 받았고 앞으로 추가 유치계획은.
▲그동안 3차례에 거쳐 58억원을 투자받았다. 4차 유치를 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비밀이다.(웃음)
-보안 대책은.
▲보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병원과 컴퓨터 설계를 할 때 보완책을 강구했다.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앞으로 AI를 주류(主流) 의학에 편입시키는 게 1차 목표다. 엑스레이도 처음 등장했을 때 주류가 아니었다. 뒤에 영상의학이 생기고 주류 의학으로 발전했다. AI도 하나의 학문체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 희망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남의 말 듣지 말고 자신을 믿어야 한다. 멘토나 스타트업 관련 책이 많지만 자신이 공부해 정답을 찾아야 한다. 모든 건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좌우명과 취미는.
▲특정한 좌우명은 없다. 하지만 늘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있다. 세 가지다. 하나는 본질을 보자는 것이다. 의료AI 방향성을 정할 때도 많은 이가 시간단축이나 비용 등 효율성을 말했지만 나는 정확도를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결정했다. 고민이나 갈등 시 표면보다 그 본질이 뭔가를 파악해야 한다. 다음은 사고(思考)다. 1998년 애플의 광고는 한 문장이었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이다. 일을 해보니까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남들이 다 찬성하는 데 혼자 반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스타트업은 일단 남과 달라야 혁신할 수 있다. 남과 같이 하면 지는 게임이다. 멘토 말도 참고사항일 뿐이다. 똑같이 하면 망한다. 남과 다르게 잘하는 게 스타트업 시발점이다. 셋째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회사 창업 시 함께한 6명은 5년이 지났지만 한 사람도 퇴사자가 없다. 오직 회사 성장이 최우선이라는 의지로 일하고 있다. 취미는 없다. 일하느라 그럴 시간이 없다. 창업 전에는 작곡도 하고 드럼도 쳤다. 컴퓨터 음악을 한 게 회사 광고를 만들 때는 도움이 됐다.
백승욱 루닛 대표는 KAIST 전자공학부 학사와 석사, 박사과정을 끝냈다. 2013년 창업해 2017년 글로벌 스타트업분석기관인 CB인사이트가 선정한 세계 100대 스타트 업에 뽑혔다. 지난해 미국 엔비디어가 선정한 사회적 임팩트가 있는 5대 기업에 아시아 기업 최초로 올랐다. 현재 삼성융합의과학원 초빙교수이자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