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우주 AI 학습기지, 한국형 AI 주권의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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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균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인공지능(AI) 경쟁은 이제 거대언어모델(LLM) 몇 개를 더 빨리 만드는 싸움을 넘어섰다. 누가 더 많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보유했느냐보다, 누가 더 정교한 연구데이터와 원천기술, 반도체, 통신, 자율실험 체계를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묶어내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K문샷 우주 미션으로 우주 데이터센터를 제시하고, 2030년까지 우주 실증을 목표로 태양광 전력 생산 및 제어, 내방사선 반도체·열제어, 저궤도 우주통신의 세 축을 먼저 설정한 것은 의미 있는 출발이다.

우주항공청이 이 기술들을 검증플랫폼 위성에 탑재해 누리호 발사로 우주 실증 이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힌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분명 매우 중요한 첫걸음이다. 그러나 실제로 운영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력·반도체·통신을 넘어 냉각시스템, 보안, 군집위성 기반 분산·연합 학습, 고속 오류정정 반도체, 내결함 컴퓨팅, 디지털 트윈 기반 검증까지 핵심 기술군을 넓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융합 솔루션 로드맵의 속도와 선명성도 앞으로 보완될 것이라 기대한다.

최근 국내 논의는 2030년 핵심기술 우주 실증, 2035년 실제 서비스가 가능한 마이크로 우주 데이터센터 단계까지를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 경쟁의 시계는 더 빠르게 움직인다. 중국은 5년 안에 우주 AI 데이터센터를 추진하고 2030년 '스페이스 클라우드'를 목표로 내걸었다. 미국에서도 2027~2028년 소규모 궤도형 데이터센터 시험 배치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렇다고 한국이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시장은 아직 세계 선도기업에도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스페이스X조차 우주 AI 데이터센터의 상업적 실현 가능성을 신중하게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의 경쟁은 누가 더 큰 돈을 먼저 쓰는지보다, 누가 먼저 핵심기술을 묶어 실증 이력을 확보하는지에 가깝다. 한국이 노려야 할 지점도 바로 거기다. 투자 규모의 열세를 인정하되, 기술 밀집도와 실행 속도로 승부하는 전략이다.

이 대목에서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대전 대덕특구의 의미가 커진다. 대덕특구에는 2024년 말 기준 27개 정부출연연, 7개 교육기관, 3000여개의 입주기관이 모여 있고, 인력은 10만명, 연간 연구개발비는 10조원에 이른다. 이미 사람과 장비, 실험문화가 한 권역에 밀집해 있을 뿐 아니라, 전국의 흩어진 역량을 연결하기에도 유리하다.

우주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전력, 반도체, 열관리, 보안, 자율 컴퓨팅, 통신은 한 기관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과제다. 그렇다면 답은 초협력이다. 대덕의 연구 집적을 기반으로 동남권의 제조기술과 수도권의 반도체 역량 등 전국의 인적·지적자원이 공통 로드맵 아래 검증 플랫폼과 실증 일정을 함께 짜면, 한국은 작은 시장의 약점을 오히려 기술 집적의 강점으로 바꿀 수 있다. 한국은 이미 흩어진 역량을 새로 모아야 하는 곳이 아니라, 모여 있는 역량을 얼마나 빨리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곳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파급효과다. 우주 데이터센터의 핵심기술은 우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고효율 전력제어는 차세대 에너지 시스템으로, 방사선 내성 반도체와 열제어는 고신뢰 AI 반도체와 서버로, 저궤도 통신은 차세대 위성통신과 재난·안보 인프라로 이어질 수 있다.

우주 데이터센터는 하나의 시설을 짓는 사업이 아니라, 여러 전략기술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압축 성장 프로젝트에 가깝다. 그래서 이 사업은 우주를 위한 투자일 뿐 아니라, 한국형 AI 인프라의 상한선을 높이는 투자로 봐야 한다.

AI 주권은 선언으로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도전적이고 선명한 로드맵까지 미뤄서는 안 된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세계 최대 규모를 좇는 계획이 아니라, 가장 한국적인 강점으로 가장 어려운 문제를 먼저 실증하는 전략이다. 우주 AI 학습기지는 그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전국의 기술을 한데 묶어 5년 안에 첫 융합 솔루션 검증 이력을 만들어낸다면, 한국은 AI 인프라 경쟁에서 결코 작은 플레이어가 아닐 것이다.

문재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jmoon@kaist.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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