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에게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뉴스를 꼽으라면 어떤 것일까. 개인으로는 기업연구소 4만개 돌파와 마곡 연구개발(R&D)복합단지 소식을 포함하고 싶다. 남북정상회담, 무역 분쟁 등 국가 빅 이슈에 묻혀서 크게 부각되지 못했지만 우리 산업기술 혁신 역량의 성장과 미래를 상징하는 소식으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지난 40년 동안 우리 기업은 기술 혁신에 많은 투자를 했다. 2016년 한 해 동안 우리 기업이 R&D에 투입한 자금은 53조원을 넘었다. 1978년 기업 전체의 R&D 투자 규모가 720억원(과학기술 연구개발 활동 조사 각 연도)에 불과한 것을 떠올리면 놀라운 성장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은 2017년 세계경쟁력 연감에서 우리 기업의 R&D를 투자 면에서 세계 5위, 연구인력 세계 6위, 특허출원 수 세계 4위로 각각 평가했다. 비록 GE, IBM, 듀폰 등 선진 기업이 수세기에 걸쳐 확보한 기술 경쟁력을 완전히 따라잡지는 못했지만 R&D 인프라만큼은 선진국 못지않은 수준까지 끌어올린 듯하다. 산업기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남다르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넘쳐야 할 산업기술 현장은 오히려 활력이 떨어지는 듯하다. 급격한 기술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재 확보가 중요하지만 연구 인력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기반 기술로 분류되는 ICBM(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바일)은 물론 기존 주력 산업도 인력난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R&D 투자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기술 발전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지고 기술 개발 비용도 커지면서 R&D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국내외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업의 투자 여력이 약화되면서 R&D 투자 증가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 따르면 2012년까지 10% 이상 고공 행진하던 기업의 R&D투자 증가율은 최근 5%대로 떨어졌다. 게다가 R&D 투자에 대한 조세감면액은 2013년 3조5000억원에서 2016년 2조5000억원으로 1조원 이상 축소되는 등 기술 혁신에 대한 정부 관심과 지원마저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런 문제 기저에는 기업 스스로의 책임도 일부 있다. 인력 양성에 투자하기보다 당장 활용 가능한 경력자를 선호했다. 투자 또한 미래를 준비하는 중장기 R&D보다 단기 성과에 집중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기술 혁신이 여전히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떠받치는 근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없다. 산업기술 혁신의 주역이자 미래를 만드는 혁신의 산실이 바로 기업연구소다. 4만개 기업연구소에 도전 정신과 자부심으로 활력이 넘쳐야만 산업의 미래도 약속할 수 있다. 현재의 침체된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그 여파는 개개의 기업을 넘어 우리 경제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R&D는 한 번 뒤처지면 다시 따라잡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에 그 여파는 예상보다 길어질 수도 있다.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정부와 사회가 기업연구소에 대해 좀 더 앞을 보고 격려 및 지원해 줬으면 한다.
지난달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입주한 한 대기업 연구소 개소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 관계자를 격려했다. 2004년 기업연구소 1만개 돌파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산업기술인을 청와대로 초청해 격려한 장면과 겹쳐 감격스러웠다. 앞으로 이런 장면을 더 자주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송석정 CTO클럽 대표간사, 전 코오롱인더스트리 중앙기술원장 seogjeongs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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