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20년만에 회장직을 승계한 고(故) 구본무 LG회장은 끈기와 결단의 리더로 손꼽힌다.
LG그룹 차세대 먹거리를 전자, 화학, 통신 서비스 3부문으로 재편, 명실상부한 글로벌 LG의 프레임을 잡은 장본인이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불굴의 결단력으로 LG디스플레이의 대형 올레드(OLED)사업, LG화학의 이차전지 사업부문 세계 시장 1위를 달성했다.
시장에서는 당초 구본무 회장의 혁신적인 사업 재편에 부정적인 시그널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룹 중 최초로 지주회사체제 전환에 성공하며 LG의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들었다.
계열 분리를 잡음 없이 이뤄내면서 기업 구조 전환을 이끌었다. 투명한 지배구조에 대한 의지와 빠른 결단력으로 LG가 안정적 경영활동을 이뤄갈 수 있는 지배구조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구 회장 체제 아래 있던 LG는 2003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다.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해소해 한 기업 어려움을 다른 기업으로 확산하는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은 당시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었다. 순환출자는 'A→B→C→A' 식으로 연결 고리 형성해 기업을 지배하는 구조다. 당시 국내에서 보편적으로 퍼진 기업 구조 지배 방식으로 특히 대기업이 적은 자본으로도 소위 문어발식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지분을 출자했다는 이유로 사업적으로 무관한 계열사에 자금을 지원하는 부담도 없앴다.
LG는 1999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작업에 들어갔다. 외자유치와 기업공개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에 이어 단계적 구조조정으로 기초체력을 다졌다. LG는 지배구조를 지주회사와 자회사간 수직 출자구조로 단순화했다. 자회사는 사업에 전념하고 지주회사는 사업포트폴리오 등을 관리하는 선진적 지배구조 시스템을 구축했다.
구 회장은 책임경영을 이룰 구조적 기반으로 지주회사 체제 전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구 회장은 지주회사체제로 전환을 마무리한 후 CEO와의 릴레이 미팅에서 “앞으로는 이전보다 더 적극적인 책임경영으로 자기 사업에만 매진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구 회장은 경영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사업포트폴리오도 조정했다. 1999년 LG화재를 시작으로 2000년 LG벤처투자, 2000년 아워홈, 2003년 LS그룹, 2005년 GS그룹, 2007년 LG패션 등을 있다라 계열분리했다. 이 과정에서 그룹 사업영역을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로 단순·전문화했다. 보험업·전선·정유·건설·유통 등 사업분야를 정리했다.
이 같은 효과는 사업의 글로벌 발판이 됐다. 단적인 예가 글로벌 1위 석권과 함께 최소 3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LTE투자도 단 9개월만에 완료하고 이동통신 시장 생태계 판도를 바꿔놓았다. 고인의 뚝심과 끈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지주전환 체제에 여러 대기업이 관심을 보이지만 이를 10여년전에 현실화한 1세대이기도 하다.
이 같은 조직 개혁은 구자경 전 명예회장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었다.
구자경 명예회장이 열정을 다해 추진해온 경영혁신의 마지막 단계로, 젊고 도전적인 경영진으로의 세대교체를 통해 미래 사업을 주도적으로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결심에 따라 이뤄진 국내 대기업 최초의 무고 승계였다.
이는 구 명예회장이 1988년부터 시작한 '21세기를 향한 경영구상'에 의한 LG의 '변혁 1기'가 마무리되는 것인 동시에 '변혁 2기'의 출발이었다.
당시 구씨와 허씨 가문의 원로 경영진들도 구 명예회장의 뜻에 동감하며 동반 은퇴를 결단함으로써 구 회장을 비롯한 젊은 경영진이 독자적이고 소신 있는 경영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를 LG의 핵심 사업군으로 구축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기틀이 다져졌다.
고인은 다양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그룹 핵심 사업은 물론 자동차 부품,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에 적극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이어갔다. 목표를 세우면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집념의 승부사란 별칭도 이때 얻었다.
경영환경이 어려울 때 선제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미래 성장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구 회장의 평소 지론에 따라 그룹 성장을 주도해나갈 사업 분야 위주로 구조를 개편하고 내수가 아닌 '글로벌' 진출을 우선순위에 뒀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