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배 아이빌트세종 대표는 작년 말 심한 몸살을 앓았다. 1999년 1인기업으로 창업해 매출 100억원 규모로 일궈낸 제이비엘(JBL)의 모든 지분을 직원에게 무상으로 넘겨줄 때의 일이다.
오랜 기간 생각한 일이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려니 몸이 자연스럽게 '이상 반응'을 보였다. 산업용 전기·전자 제품, 반도체 장비용 정밀부품을 제조하는 JBL은 이 대표 품을 떠나 올해 신영정밀로 새롭게 태어났다.
JBL은 2005년 디스플레이 가격 폭락 등으로 심한 경영난을 겪었다. 위기를 직원들의 자발적 희생을 바탕으로 극복하면서 직원에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이 대표는 “당시 직원들은 일괄 사표를 제출하며 '이대로 포기하지 말아달라. 필요한 직원만 선택하면 나머지는 새로운 직장을 찾거나 다시 불러 줄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더라”며 “그때 JBL은 내 것이 아닌 직원들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회는 위기에서 찾아왔다. 아이디어만 가진 초기 창업자 연구개발(R&D)을 돕는 사업이 2005년 9월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때마침 디스플레이 시장도 풀려갔다.
이 대표는 이를 계기로 2007년 JBL에 연구소를 만들고 초기 창업자를 돕는 '아이디어빌트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국내 1호 액셀러레이터 아이빌트세종의 전신이다.
액셀러레이터는 초기 창업자 선발·투자·보육을 종합 지원하는 기업이다. 정부는 2016년 11월 액셀러레이터 등록·관리제도를 첫 시행했고, 이듬해 1월 아이빌트세종을 포함한 4개사가 국내 최초 액셀러레이터로 등록됐다.
이 대표는 “정부가 액셀러레이터 등록·관리 제도를 도입하면서 새로운 산업 분야가 만들어졌고 '창업국가' 실현을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아이빌트세종의 경쟁력은 '기술'과 '경험'이다.
이 대표는 2014년 최연소 기능한국인에 선정됐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은메달을 땄고, 이후 JBL 창업 전까지 기업에서 엔지니어로 활약한 '자타공인 기술인'이다. 이 대표의 기술력은 창업·경영을 거치며 한층 단단하게 굳어졌다.
이 대표는 “1인 기업으로 JBL을 창업해 여러번 실패를 겪으며 이를 교훈 삼아 재도전 해온 20년 경험은 초기 창업자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 목표는 아이빌트세종만의 성공이 아니다. 국내 액셀러레이터와 초기 창업자의 성공이다. 작년 말 출범한 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장을 맡은 배경이다. 개화를 시작한 액셀러레이터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정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이 대표 생각이다.
이 대표는 “초기 창업자를 발굴·육성해 벤처캐피털(VC) 투자 유치 단계까지 가도록 하려면 짧아도 5년이 걸리는데 그동안 액셀러레이터는 무수히 많은 자원을 써야 한다”며 “액셀러레이터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초기 5년 동안 정책적 배려와 실질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초기 창업자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거나, 치열한 노력·희생 없이 아이디어만 갖고 액셀러레이터와 만나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충고다.
이 대표는 “아이디어만 좋다고 투자할 수는 없다”며 “초기 창업자가 액셀러레이터로부터 지원을 받으려면 사업 모델의 시장성보다 열정, 노력, 용기, 희생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