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공상과학만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흰 수염을 기른 노년의 박사가 로봇기지를 운용하고, 첨단 로봇이 지구를 지킨다는 소재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내 나이는 어렸지만 만화에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기계가 우리 실생활과 사회를 좌지우지한다는 자체를 두려워 한 것 같다.
30년이 흐른 지금 나는 '이단'이라는 외부의 평가 속에 굳이 험로를 찾아다니면서까지 건설 분야에 정보기술(IT)을 접목시킨 시스템 개발과 공급을 비즈니스로 하여 전개하고 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아직까지 나는 현실 명분을 중시한다. 강산이 세 번 정도 변하다 보니 말이 안되는 것 같던 옛날 그 과학만화의 한 컷은 무서울 정도로 현실성을 띠고 있었다.
인공지능(AI) 범주는 확장세다. AI는 농산물 가격을 예측하고, 의료·법률·보험·무인점포·불법거래감시·음성비서·상담사에서 국가 안보까지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AI와 인문학 간 괴리는 직업군 변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명 아래(AI에 의한) 유토피아-디스토피아라는 흑백 세상을 낳았다. 어느새 현실감이 현저히 떨어진 AI 세상이 눈앞에 닥치다 보니 이로 인한 매너리즘 또한 서글픈 편린으로 다가온다.
AI도 실수할 수 있다. 그래서 AI는 수용의 문제다. 절대 잣대로 보면 안 된다.
알고리즘 결함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데이터가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기계학습 방법의 AI는 훈련에 사용한 데이터 질에 따라 성능이 판가름된다. 소규모 데이터에 기반을 둔 AI 결정에는 리스크가 잔재한다.
AI 시대를 잉여인간 양산 시대로 치부하기에 앞서 AI를 인간 편의에 맞춰 취사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AI 감성 지능은 인간보다 결코 월등하지 않다. 인간은 생물학 분류상 진화 최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AI 기술을 인간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AI 기술을 생활, 생산 현장, 사무 공간에 접목해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다면 이로 인해 비축한 새로운 자원의 총합은 엄청나다. 비축한 자원을 새로운 창의성 발현에 사용할 수 있고, 때로는 다음 업무를 준비하기 위한 여흥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결국 전체 생산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AI를 도외시하는 것보다 AI 도입으로 기술 진보를 이루고 사회 전반 효용을 높일 수 있다면 AI는 유토피아 기반이 될 수 있다.
과거에도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사회는 여러 우려 속에 혼란을 겪었다.
초기 자동차 발명과 공급 과정에서 마부들은 반발했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은 발전을 거듭했다. 그 결과 운전수, 차량 정비사, 관련 부품 산업 등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다. AI 염려도 수백년에 걸쳐 지속된 산업혁명 과정에서 기술 진보가 불러온 우려와 함께 나타나는 사회 변혁 맥락과 결코 다르지 않다.
AI를 기반으로 사내에 기능별 등급제를 도입했을 때 내부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직원과 협력사는 처음 접해 본 AI 기술에 생경함을 나타냈고, 인간이 아닌 기계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자존감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결국은 사람을 위한 AI이고 사람 편의를 위한 AI 도입이라는 데에 공감했다.
AI 로봇 출현이 결코 유쾌하지 않던 어린 시절 기억은 이제 추억일 뿐이다. 지금 AI와 로봇은 괴리감 있는 기계가 아니라 운용 방법에 따라 인류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다.
이동군 군월드 대표 m012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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