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122> “인간 중심 일자리 만들어야” 배순훈 전 정통부 장관(S&T중공업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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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훈 전 정통부 장관은 “창의력은 진화하는 것”이라며 “경제가 중심이 아닌 인간중심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욱기자 gphoto@etnews.com

배순훈이란 이름에 붙는 수식어는 많다. 교수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장관, 미술관장 등이력이 화려하다. 나이 서른아홉에 대우전자 사장이 됐다. 그 시절 탱크주의 광고는 그를 '국민 엄친아'와 '국민 남편'으로 만들었다. 관운도 좋았다. 김대중 정부에서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CEO 입각 시대를 열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장(장관급)으로 일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부처 실장급인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냈다. 직급 파괴였다. 공학자로서 미국 세계무역센터에 에어컨시스템과 미국 원자력 잠수함 냉동기 설계를 했고 티코 브레이크 국산화, 자동차용 발전기와 온돌 보일러를 개발했다. 대우전자 CEO 시절 작업 전 아침마다 시를 낭송하며 명상 시간을 가졌다. 늘 '왜'라고 질문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장관에서 물러난지 19년 만에 지난해 12월 4일 대한민국인터넷대상 시상식에서 개인공로상을 받았다. 기업과 정부, 학계를 넘나들며 한국경제 성쇠를 체험한 배 전 장관을 1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났다. 그는 정치와 경제, 예술분야까지 걸림이 없었다.

-새해 소망하는 일은.

▲국립현대미술관 진흥재단이 크게 발전하길 소망한다. 미술관이 정부 지원만으로는 창의적 일을 못한다. 자체 수입이 있어야 한다. 미국은 기부를 받는다. 미술관 운영에 경영기법을 도입해야 한다. 관장으로 있을 때 4000억원을 들여 8000여평 공간에 서울관을 신축했다.

그는 인구 50여만명 철강 소도시에 미술관을 건립, 연 200만명 관광객을 끌어들인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만든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 등 문화명소에 관해 설명했다. 빌바오 미술관 건설에는 직접 도움을 주기도 했다. 경기고 선배이자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은 미국과 독일, 일본 등지에서 기상천외한 퍼포먼스를 많이 했다. 생전 그와 가끔 만났다고 한다.

-어떤 퍼포먼스를 했나.

▲고가의 피아노를 부수거나 누드 여인이 첼로를 연주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세계 최초 해프닝 예술장르를 선보인 게 그다. 그는 퍼포먼스를 “지랄발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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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기업체 회장, 장관 중 어느 쪽이 가장 잘 맞는가.

▲직위나 명칭보다는 뭘 하는가가 중요하다. 타이틀이 중요하지 않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일을 알아듣게 강의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자면 재미가 있어야 한다. 다 아는 이야기와 조금 생각해야 아는 이야기, 전혀 모르는 이야기를 혼합해 강의했다. 학생들에게 인기 1위였다. 제자들이 강의 내용은 기억 못하고 재미있었다는 것만 기억한다.(웃음)

-4차 산업혁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4차 산업혁명은 주체 세력이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야 한다. 산업변화가 혁명 같다고 해 혁명이라 부른다. 영국 산업혁명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에서 시작했는데 인력 보다 훨씬 큰 기계동력을 이용해 대량생산을 했다. 제임스 와트는 아마존이나 구글과 같은 거대 기업을 만들지 못했다. 이 시대 큰 변화를 주도하는 인물이 큰 기업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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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AI 시대에도 기계는 기계고 인간은 인간이다. 변혁에 맞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각국이 공통으로 하는 고민이다. 18세기 영국에선 방적기가 나오자 많은 숙련공 일자리가 없어졌다.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사람들만 고통을 받았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기술을 아는 사람이 현장을 지켜야 기계가 돌아간다. 세계화로 사람과 일자리가 이동한다. 우리는 3D 업종이 싫다고 해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늘었다. 3D 일자리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자리로 바꿔야 한다. 프랑스 파리는 쓰레기 수거를 자동화했다. 3D 업종이지만 즐겁게 청소한다. 경제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 경제다. 실리콘밸리처럼 창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러나 벤처기업이 국가트렌드를 만들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못하는 일을 잘하면 그것이 경쟁력이다. 경쟁력이 있으면 어디서나 일자리는 있다.

-정통부 장관으로 발탁된 이유는 뭐라 생각하나.

▲1998년 1월 프랑스로 나갔다. 2개월여쯤 청와대에서 “장관으로 일해 볼 생각이 없느냐”며 전화가 왔다. 무슨 장관이냐고 물었더니 “과학기술부나 산업자원부 장관 중 하나”라고 했다. 시간을 달라고 했다. CEO 중에서 추천을 받았는데 내가 1위였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지식정보사회 구축' 청사진을 밝혔다. 사흘가량 지각 임명장을 받고 김 대통령에게 “어떤 일을 하길 원하시느냐”고 했더니 “그건 장관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 당시 한국 정보기술(IT) 순위는 세계 22위였다. 이걸 5위로 올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비대칭형디지털가입자망(ADSL)을 구축했다. 처음엔 내부에서도 반대했다. 정통부 내 신용섭·형태근 당시 과장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신윤식 하나로통신 회장이 상용서비스를 주도해 성공했고 나중에 KT도 이 일에 가세했다. 장관 역할은 의견을 듣고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다. 1년여쯤 뒤 '빅딜 반대 발언'으로 장관을 그만 뒀다.

그는 재임시절 우정사업에 민간경영 방식을 도입해 우정 역사 115년 만에 처음 흑자를 냈고 공무원들에게는 어떤 일을 할 때 3번 이상 '왜'라는 질문을 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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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정부 역할은.

▲기업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정부 역할은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박정희 정부는 기업을 평등하게 지원하지 않고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만 선별 지원했다. 불공평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그런 정책으로 한강변 기적을 이룩했다. 국민은 독일 광부, 간호사로 가지 않고 국내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어떻게 대우로 갔나.

▲미국 MIT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기업에 취업했다. 1972년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과 조교수로 강의를 했다. 어느 날 고교선배인 김우중 회장이 만나자고 해 갔더니 “강의 없는 날 오후에 회사에 나와 커피나 한잔씩 하자”고 했다. 창밖을 보니 직원들이 마당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할 일이 없다고 했다. 대우가 발전소를 짓기로 하면서 1976년 대우중공업 기술본부장으로 갔다. 울산화력발전소 4·5·6호를 2년 만에 국내 처음 턴키방식으로 완공했다. 그 후 입각할 때까지 20년 이상 대우그룹에서 일했다.

그는 대우자동차부품 사장시절 수입해 쓰던 티코 브레이크를 국산화했으며 1988년 자동차용 발전기를 개발해 1989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상을 받았다. 대우전자 사장과 회장을 역임하면서 1993년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탱크주의'를 주창(主唱)했다. 아침 작업 전 시(詩)를 낭송하며 15분씩 명상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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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회장은 어떤 경영인인가.

▲그는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사용했다. 골프도 안하고 검소해 외국 출장가면 직원과 한 방에서 잤다. 양말도 손수 빨았다. 회사는 자식한테 절대 넘겨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개인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집이 신문로에 있었는데 날마다 그곳으로 가서 같이 출근했다. 주변에서 시기 질투를 많이 받았다. 김 회장은 섬유 수출로 창업해 돈을 벌어 창조와 도전, 희생정신으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세계경영을 펼쳤다. 남성용 셔츠를 대량으로 만들기 위해 천을 수 백장씩 쌓아놓고 톱으로 마름질했다.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 기업인이다.

그는 5공화국 출범 후 중화학공업 구조조정 과정과 전두환 대통령 퇴임 무렵 만남, 국제통화기금(IMF)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와 김 회장 간 갈등, 노무현 대통령과 나눈 대화 내용도 이야기했다.

-창의성은 어떻게 해야 발휘되나.

▲창의성은 발휘하는 게 아니다. 진화하는 것이다. 어떤 답을 찾기 위해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해 반복하는 것과 같다. 창의사고력 5단계가 있다. △문제를 정의한다 △철저히 공부한다 △잊어 버린다 △순간 생각을 포착한다 △타당성을 입증해 추진한다(반짝 생각이 모두 황금은 아니다) 등이다.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그건 기업이 가장 잘 안다. 정부는 잘 하는 기업을 골라 지원하면 된다. 세계시장에서 자유경쟁 한다는 것은 이상(理想)이다. 자유경쟁은 경제이론가들이 하는 말이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민주화라고 하지만 시장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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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제 인상 도입은 어떻게 보나.

▲최저임금 인상이 좋긴 하지만 결과를 예측해야 한다.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면 기업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편법을 동원해 지키지 않거나 해외 근로자를 채용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단속이 심해지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길 것이다.

-좌우명과 취미는.

▲정한 좌우명은 없다. 이제는 유희 자본주의(Ludocapitalism) 시대다. 취미가 일이고 일이 취미다.

배 전 장관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아 미국 MIT에서 석사과정을 끝낸 뒤 6개월 만에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쓴 논문은 해당분야 교과서에 실렸다. 보그워너에서 수석기사로 일했다. 1972년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원 부교수로 재직하다 대우중공업 기술본부장으로 영입되면서 김우중 대우 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대우자동차부품 사장과 대우국민차 사장, 대우전자 사장, 회장으로 탱크주의 열풍을 일으켰다. 대우 재직 중 미국 스탠퍼드대와 MIT에서 공학설계와 시스템설계를 강의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입각해 우체국 혁신과 초고속망 확산을 주도했다. '빅딜반대' 발언으로 물러나 KAIST 부총장과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S&T중공업 회장과 국립현대미술관진흥재단 이사로 활동한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상과 한국의 경영인상, 동탑산업훈장, 청조근정훈장, 프랑스 레지웅도뇌르 훈장, 브라질 하오브랑코 훈장을 받았다. 저서로 '우리에게는 위기 극복의 유전자가 있다'와 '기본으로 돌아가자'가 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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