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과학은 ‘지능’현상을 규명하고 탐구하기 위한 제 학문의 융합을 의미한다. 원리적탐구로서 신경과학, 언어학, 심리학, 철학, 인류학이 이론적인 분석 툴을 제공하고, 구성적 탐구로서(만들어 봐야만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종합적-구성적 툴을 제공한다. 분석과 종합은 한 마당에서 이루어지기 힘든 일인데, 인지과학이 이런 ‘엮음’을 시도하는 이유는, 전설 한대로 지능 현상이 물리 현상도, 정신 현상도, 사회 현상도 아닌 매우 모호하고 복잡한 융합적 창발-우연적 현상이라는 데에 그 이유가 있다. 즉 분석으로만 분석되지 않고, 분석의 툴이 없이 마구 만들어본다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닌 오묘한 성격의 학문이라는 점이다.
인지과학이 4차산업혁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은, 바로 본 혁명이 지능의 혁명이자 물리-비물리가 마구 혼재되어 있는 지능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혁명이라는 점이다.
지능화된 공간을 90년대 초반에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Ubiquitous Computing)의 개념 정립으로 시작하여, 미디어아트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피지컬 컴퓨팅 (Physical Computing), 최 근래에 들어 사물인터넷 (Internet of Things), 그리고 앰비언트 인텔리전스 (Ambient Intelligence)로 개념의 계보를 이어온다. 모든 것이 살아있으며 '살아있음'을 통해 무생물과 생물, 기계와 사람, 개념과 현상이 한데 뒤엉켜서 이전에는 맛보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느낌과 효용을 끝없이 만들어 나가는 혁명적 차원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이상한 현상이다.
‘인지’라는 특이한 현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정신적-지적-물리적 변혁이 4차 산업혁명이므로, 인지 현상에 대한 파악과 설계의 원칙, 상품과 서비스가 지녀야할 부가가치성의 원칙을 설계하고 리드하는 일이 산업화의 무엇보다도 중요한 선결과제인 셈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성능 평가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경우, 설계보다는 ‘어떻게 하면 목표 성능이 나올 것인가’가 유일한 관심거리이고, 설계는 성능 도달을 위한 설계인데, 인지공간에서의 부가가치는 반대로 ‘어떤 문제가 유효한 것인가?’라는 문제제기 자체가 더 중요하므로, 유효하고 영양가 있는 문제를 발굴하는 ‘인지개념설계’가 엔지니어링과 구현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지능 공간, 인지 공간
1차 산업혁명의 근간은 ‘열에너지’의 정복을 통해 동력을 만들고, 이것이 대량생산체제와 대량수송체제로 폭발하여 새로운 경제적 동력을 만들어낸 물리적-공간적 변혁에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공간은 물리적 공간의 압축이 아니라, 소비자 이자 고객, 아니면 사용자가 생각하는 인식의 공간이 실재의 공간과 오버랩(overlap, 중첩)된 인식론적 공간의 압축이 그 특징이다. 리얼리티 기술이라 불리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 시지각 채널의 실재-가상의 혼합이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허나 가상으로 쇼핑몰에 가보거나, 현실의 교실이 놀이공원처럼 변모한다 하여 즉각적으로 많은 부가가치, 혹은 산업적 수요가 폭발하지는 않는다. 인간지능의 까다롭고 고유한 속성이 그저 눈앞에 멋진 장면이 펼쳐지는 것 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업적으로 중요한 지능 공간, 인지 공간의 특성은 바로 스토리텔링의 기본요소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스토리텔링의 기본은 화자이자 페르소나라 불리는 가짜 인격이 공간에 포진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그 인격 혹은 가짜 인물이 행동을 통해서 ‘실재하는 나’ 혹은 ‘또다른 인격’과 상호작용-즉 감성의 교류, 교역, 경쟁, 친교 등등-을 해 나가는 것이 사람이 알고있는 인지 공간의 특징이다. 즉 가상현실기술이든 증강현실이든 또다른 기술적 진보로 만들어지는 현실화 기술이든 간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임재성 (presence)-이라는 단일 채널로 공간을 파악하는 사람의 인지적인 속성이 최우선 고려 요소이다.
이때 임재성과 인격성을 부여하는 결정적인 기술이 인공지능이다. 즉 사람 비슷하게 지각하고, 센싱하고, 대상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어떠한 관계로 드라이브 할 것인지 판단하고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파악하여 행동하는 역할은 지금 몰아 닥치는 인공지능 스피커가 그 원초적인 모습이다. 인격을 가진 주체로 행동하는 공간이 바로 지능 공간, 인지 공간이며 이 공간 위해서 가상성과 실재성이 오버랩되면 지금껏 인류가 구경해보지 못하고 맛보지 못한 새로운 서비스들이 매우 폭발적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지능의 새로운 면모를 설계하고 구현하는 ‘지능을 둘러싼 생각과 능력’이 전통적 인간관이 공간-비용적 제약성을 떨쳐버리고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서비스를 통해 부가가치를 만들어주는, 4차산업혁명을 점화시킬 방아쇠가 될 것이다.
이수화 westwins@mtcom.co.kr 서울대학교 서양사학 전공, 서울대 인지과학협동과정에서 석사•박사과정 수료. ㈜LGCNS 시스템 엔지니어,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두뇌 인지활동의 기능적 MRI 연구, 벤처기업에서 논리학습을 위한 기능성 게임, 인공지능 비즈니스모델링 •영어교육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의 개발을 해왔다. 각종 벤처창업학교에서 퍼실리테이터•강사•멘토 역할을 맡아 활동 중이다. 현재 (주)엠티콤에서 인공지능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며, 한국인지과학산업협회 인문계와 이공계의 융복합적 전공 경험뿐 아니라 수행했던 다양한 직업 경험, 그리고 인간지능에 대한 깊은 이해•관심을 바탕으로, ‘지능산업’의 발전과 육성을 위한 노력을 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