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이 시작되면서 인공지능계는 두 개의 큰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1월 24일은 인공지능 분야의 큰 별인 마빈 민스키 교수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3월 9일 인공지능의 새로운 별이 한반도에 등장하여 2주간 전 세계 방송매체를 통해 빛을 발하게 된다. 바로 우리 바둑계의 자존심 이세돌을 이긴 인공지능 기계인 알파고이다.
인공지능을 탄생시킨 주역들 중 한 명인 민스키 교수가 저술한 ‘퍼셉트론’은 알파고의 가장 핵심무기인 딥러닝의 원조격인 퍼셉트론의 한계를 설파한 책이다. 퍼셉트론은 민스키의 고등학교 1년 후배인 심리학자 프랭크 로젠블랫이 신경세포의 특성을 본 따서 만든 것으로 인공신경망이라 알려진 기계학습 알고리즘의 최초의 조상이다. 민스키는 인공지능 연구의 큰 두 가지 서로 다른 줄기를 ‘기호주의’와 ‘연결주의’로 구분하였다.
기호주의는 마치 우리의 기억 속에 지식을 넣어두었다가 문제가 주어졌을 때 알고 있는 지식을 사용해 논리적 추론을 하는 것과 같은 인공지능 기계를 만드는 것이다. 연결주의는 사람이 새로운 것을 학습할 때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이 재배열되고 강화된다는 사실을 모방해서 만든 기계학습 이론과 방법론을 지칭한다. 이 둘은 학문의 뿌리가 달라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하나로 합쳐지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근대 서양철학의 합리론과 경험론이 서로 다른 가정에서 출발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기호주의와 연결주의가 서로 반감을 가져왔던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호주의 편에 서서 퍼셉트론을 비판했던 민스키도 그랬던 것 같다. 2016년의 알파고는 1971년에 짧은 생을 마감했던 로젠블랫이 기계로 환생한 것이 아닐까?
인공지능인 알파고가 인간 바둑천재를 무너뜨린 해로부터 정확히 60년 전 1956년은 인공지능이 태어난 해이다. 그 해 다트머스 대학에 모인 젊은 과학자들이 새로운 학문으로서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작명하고 7개의 연구주제를 새로 정의하며 토론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한 명이 위에서 언급한 민스키 교수였다. 그 당시 이들이 던진 인공지능의 큰 주제들은 아직까지도 이 분야에서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인 것들이다. 그 중에는 인공신경망, 자연어처리, 논리적 추상화, 기계의 창의성 문제등과 같은 이슈들이 포함되었었다. 1940년대에 진공관 컴퓨터란 것이 막 등장했으니 이들은 사실 다트머스에서 함께 꿈을 꾸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날 같이 성능 좋은 하드웨어도,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철학적 사유, 심리학적 관찰, 수학적 증명이란 수단을 총동원해서 꿈을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 탄생의 자리에 함께 하지도 못하고 일찍 생을 마감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실제 주인공)은 컴퓨터가 만들어지기 이전인 1936년에 인간의 생각을 모방할 수 있는 자동기계를 수학적으로 형식화하고 증명하였다. 튜링도 미래의 시간을 현재로 당겨오는 꿈꾸는 사람이었다.
짧은 지면에 모두 나열할 수 없지만 인공지능의 탄생 주역들은 무모하리만큼 다른 학문들에 대해 열려있었고 인간의 인지적 과정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한 젊은이 들이었다. GPS(General Problem Solver)란 개념을 만든 허버트 사이먼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컴퓨터공학뿐 아니라 심리학, 행정학, 경영학, 철학에서 큰 업적을 남긴 학자로 인공지능 탄생의 주역들 중 한 명이었다. GPS란 개념은 알파고 같이 바둑이란 특수한 문제상황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살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용될 수 있는 일반지능을 의미한다. 알파고의 친정격인 구글 딥마인드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게임만 하는 기계가 아니라 GPS와 같은 능력을 알파고에게 심는 것일 것이다. 알파고의 강력한 라이벌인 IBM의 왓슨도 미국의 유명한 퀴즈게임에서 우승하더니 이제는 우리나라 길병원에서 암 전문의로 활동한다는 소식도 들려준다. 불과 60년 만에 커다란 변화가 이뤄진 것이다. 마치 꿈이 이제 완전히 현실화 되어 버린 것 같다.
정말 인공지능은 커즈와일이 ‘특이점이 온다’란 책에서 예언했듯이 초지능(Super Intelligence)을 가진 존재로 급진적으로 진화할 것인가? 그렇게 까지 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왔고 한계는 과연 없는 것인가? 알파고 사건 이후 모든 정치인들은 4차산업혁명을 외치고 있어 엄청난 연구개발 예산이 쏟아 부어질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과연 정확한 개념을 갖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인공지능 분야를 연구하던 80년대 말부터 90년대에는 인공지능 분야의 부침이 있었다. 모든 것을 인공지능이 다 해결해줄 것 같았고 의사도 모두 사라질 것 같더니 하루아침에 AI란 이름으로 나오는 정부예산이 다 끊겨버렸다. 꿈을 꾸는 사람들이 워낙 많은 미국에서는 컴퓨터란 것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인 1930년 대부터 일간 신문에 ‘생각하는 기계는 꿈을 꿀 수 있을까?’, ‘생각하는 기계는 감정도 가지고 예술활동도 할 수 있을까?’와 같은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시절 사람들이 꾸던 꿈들이 이제 현실화 된 것인가? 아직도 꿈을 꾸거나 환상을 보는 것인가?
이제 답이 아닌 결론을 맺어야겠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인공지능의 성장은 인간의 인지과정에 대한 이해의 정도와 비례하는 것 같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를 작동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하드웨어와 에너지 소비량은 어마어마하다. 세상일은 바둑과 같이 잘 정리가 된 것도 아니다. IBM 왓슨이 가지고 있는 지식도 결국에는 사람 전문가가 밝혀낸 의학과 생물학 지식인 것이다. 로젠블랫의 퍼셉트론은 1950년대의 신경과학에 머물러 있고, 사실 그것도 실제 뇌의 신경세포의 특성을 다 반영한 것이 아니라 매우 단순화 한 수학적 모델에 불과하다. 딥러닝 기술도 지금의 뇌인지과학 연구를 제대로 반영한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기호주의와 연결주의 간의 싸움도 여전한 것 같고, 이 둘이 서로 잘 연결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우리 두뇌에서 일어나는 지각, 학습, 기억, 의식, 감정과 같은 인지과정들이 잘 통합된 인공지능을 흉내라도 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음성인식과 이미지 처리는 사람 이상으로 잘 하는 것 같은데 실제 음성과 이미지의 의미를 사람이 알듯이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서비스의 관점에서는 인공지능은 이전과는 매우 다르다. 학문으로서의 인공지능이 90년대 이후 산업화의 길에 들어와서는 확실히 성공한 것 같다. 하지만 기술의 포장이 벗겨지면서 또 다른 실망이 오기 전에 꿈은 계속 꾸어야 한다. 바로 그 꿈은 인지과학혁명을 향한 꿈이다. 인공지능의 씨앗인 인지과학은 미래의 4차산업혁명을 더욱 풍성하고 단단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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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hgkim@snu.ac.kr 학부와 대학원에서 심리학, 컴퓨터과학, 철학을 공부하였으며, 경영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인지과학협동과정 주임교수와 치의학대학원 의료경영정보학 전공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김홍기 교수가 이끌고 있는 서울대학교 의생명지식공학연구실은 생물학, 임상의학, 컴퓨터공학, 인지과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연구원들이 융합연구의 생태계를 만드는데 노력하고 있다. 특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데이터 중심의 의학과 생물학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