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최대 관심사는 일자리 창출이다. 이를 앞세워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쇠약한 미국 제조업 지대를 일컫는 `러스트 벨트` 등지에 사는 백인 중하위층 절대 다수의 지지를 앞세워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들 백인 중하위층이 가장 원하는 게 일자리다.
14일 트럼프타워 25층에서 트럼프가 미국 주요 정보통신기술(ICT) 경영인 12명과 만나 `테크 서밋`이라는 이름으로 간담회를 열었다. 트럼프는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이를 위한 규제 완화 등을 강조했다.
`테크 서밋`에 참석한 ICT 경영자들은 대부분 지난 대선 기간 트럼프 반대 진영에 섰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대표하는 ICT 거물로서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 지사를 두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 기업에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지 마라. 일자리가 없어진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강조해 온 트럼프는 자신을 반대해 온 이들 ICT 거물과 만나 화해 제스처를 보내며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에 기여해 줄 것을 당부했다. `위대한 미국 재건`을 앞세운 트럼프로서는 그만큼 실리콘밸리 기업의 대형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 시급했다.
ICT 기업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트럼프 정부의 규제 완화가 필요한 만큼 관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데다 트럼프와 ICT 거물들 간 첫 만남이기 때문에 간담회는 안팎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에 ICT 기업을 주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이민과 정부 감독, 데이터 암호화 등 여러 문제를 두고 실리콘밸리 기업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아이폰 불매 운동을 주장하거나 ICT 산업이 과대평가돼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ICT업계도 가만있지 않았다. 150명의 ICT 리더들은 “트럼프는 혁신에서 재앙이 될 것”이라며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제프 베저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워싱턴포스트를 앞세워 트럼프와 전쟁을 선포하는 등 반트럼프 전선에 앞장섰다. 미국 5대 ICT 기업은 트럼프 후보에 비해 60배나 많은 금액을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후원했다.
트럼프가 당선되자 실리콘밸리는 혼란에 휩싸였다.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반이민 정책을 펼치면 제품 생산과 수출, 고급 해외 인력 유치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 규제완화가 필요한 신성장 동력 산업도 트럼프 정부 아래에서 벽에 부닥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자율주행차, 로봇, 인공지능(AI) 등 혁신 분야는 정부의 새로운 정책과 제대로 조화가 돼야 진전을 이룰 수 있다”면서 “실리콘밸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들 분야의 지속 성장을 담보할 정책 틀을 짤 수 있을지 우려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당선 이후 대선 기간과 달리 정책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테크 서밋`도 이의 일환이다. 폭락이 예상되던 미국 증시가 한 달째 상승세인 것도 `트럼프 시대`를 맞아 도래할 미국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법인세를 내리겠다는 공약도 기업 순익 증가로 이어지고, 기반 시설 투자 확대로 연결돼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외신은 “트럼프와 ICT 거물들 간 만남은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운 반ICT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자리가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신들은 트럼프가 규제 완화를 제시하고 그 대신 ICT 기업은 혁신과 일자리 창출에 힘써 줄 것을 당부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해외 공장 이전 문제와 망 중립성, 이민자 등과 같은 민감한 주제가 논의한 것으로 보이지만 공식 발표된 건 없다.
일부 참석자는 “트럼프가 ICT 기업에 정부의 낭비 요인 탐지 및 제거에 데이터 분석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회의는 예상보다 긴 90분 동안 열렸다. 외신들은 회동을 계기로 힐러리 민주당 대선 후보를 전폭 지지하던 ICT 기업이 트럼프와 화해 분위기를 조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만남을 계기로 각종 ICT 관련 규제가 완화될 지 주목된다. 미국 ICT 기업은 그동안 자율주행차 등 신사업 추진을 위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ICT 기업은 회동에서 로봇, 드론, 자율주행차 등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으며, 트럼프도 이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