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PC·스마트폰에서 사물인터넷과 가상현실(VR)로….`
지난달 31일 개막한 컴퓨텍스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요약된다. 36년 역사의 아시아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박람회 `컴퓨텍스`가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컴퓨텍스 성장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PC와 대기업 중심에서 소프트웨어와 솔루션, 스타트업으로 무게추가 옮겨가고 있다. 대만 전자산업의 고민과 변화가 전시회 곳곳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하드웨어에 머무르지 않는다`
31일 찾은 타이페이난강전시관. 이곳 4층에는 벤큐, 에이수스, MSI, 에이서 등 대만의 전자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이 모두 집결했다. 그런데 올해의 주력 제품과 미래 기술을 선보이는 각 부스를 가득 채운 건 PC·스마트폰이 아니었다. 사물인터넷, VR, 로봇이 중심에 있었다.
국내 모니터·프로젝터 제조사로만 알려졌던 벤큐는 시스템통합(SI) 업체와 다르지 않은 솔루션을 대거 출품했다. 스마트폰 앱으로 간편하게 음식 메뉴를 주문할 수 있는 `스마트리테일` 솔루션부터 헬스장에서 고객 운동량·건강상태를 분석·관리하는 `스마트헬스케어` 솔루션까지 사물인터넷과 IT 서비스로 발을 넓혔다.
대만 최대 PC 메이커인 에이수스는 가정용 로봇 `젠보`를 첫 공개했다. 조니 시 에이수스 회장이 개막 전날 별도로 가진 발표회에 나와 사람과 대화할 수 있고, 음성 명령으로 조명이나 에어컨 같은 가전을 제어해주는 로봇을 직접 시연해 보였다. 에이수스는 이어 컴퓨텍스 전시장 한쪽을 가정집처럼 꾸며 젠보를 활용한 미래 생활상을 관람객에게 선보였다.
에이수스와 같이 PC, 노트북 등으로 널리 알려진 MSI는 대형 부스를 VR로 채웠다. MSI는 VR게임이나 헤드셋을 만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시 공간 절반 이상을 VR 체험장으로 꾸몄다. 이 회사 관계자는 “MSI PC와 노트북 등이 VR게임에 최적화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 자연스럽게 판매로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약을 준비하는 대만 전자산업
세계적 위탁 생산 전문 업체 홍하이는 일본 소프트뱅크와 함께 만든 인간형 로봇 `페퍼`와 산업용 로봇을 선보였고, XYZ프린팅과 플럭스 등은 차세대 프린터로 부상하고 있는 3차원 프린터를 선보였다.
1981년 개최된 컴퓨텍스는 PC 산업 성장과 궤를 같이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 컴퓨팅 기기의 3분의 1 이상이 대만 기업에서 생산돼 컴퓨텍스는 자연스럽게 아시아는 물론, 세계 최대 PC 연관 산업 전시회가 됐다.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델 등이 매년 대만을 찾아 전략 상품을 발표하는 이유다.
컴퓨텍스가 올해 달라진 것은 대만 전자 업계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PC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했던 전자 산업이 성숙해지면서 새로운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 PC 시장은 스마트폰의 등장과 시장 포화 등으로 침체 상태에 놓였다. 가트너에 따르면 2016년 1분기 PC 시장은 역대 최저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가트너 측은 “지난 5년간 데스크톱 및 노트북과 같은 전통적인 PC 출하량은 2012년 3억4300만대에서 2016년 2억3200만대로 하락했다”고 밝혔다. 매출액 기준 시장 규모 역시 2012년 2190억달러에서 2016년 1220억달러로 축소됐다.
차세대 PC로 부상한 스마트폰과 태블릿도 고속 성장하다 최근 정체기에 접어들고 있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올 한 해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은 7% 성장에 그칠 전망이다. 스마트폰 판매 성장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는 건 올해가 처음이다.
이런 상황은 대만 전자 업계에 고민을 안긴다. PC에서 모바일로 변화하는 시기, HTC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대만에서도 나왔지만 글로벌 경쟁에서 힘이 빠졌다. 이젠 중국 스마트폰 기업이 오히려 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여기에 스마트폰 시장 포화로 대만 전자 업계 동력이 됐던 부품 공급 기회도 줄고 있다. 아이폰을 생산하는 홍하이 4월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9% 감소했다. 스마트폰 패널을 생산하는 치메이이노룩스는 12개월째 월매출이 축소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홍하이와 TSMC 등 대만 주요 19개사가 발표한 4월 매출액은 총7597억 대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줄어 6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컴퓨텍스에 나타난 대만 전자 업계의 모습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사업 다각화이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대만에서 가장 성공적인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3D프린터 업체 플럭스의 짐 유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대만은 전자 산업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래를 위한 스타트업 육성
올 컴퓨텍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스타트업이다. 주최 측은 타이베이국제무역센터 전시장 3홀에 스타트업 특화관 `이노벡스`를 마련했다. 스타트업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상용화될 수 있도록 전시·데모·포럼·피치(pitch) 콘테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해외 스타트업을 초청하는 열의를 보였다.
이노벡스에 참가한 민윤정 코노랩스 대표는 “부스 마련 등에 많은 편의를 제공해 각별히 신경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만은 스타트업이 산업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하길 기대하고 있다. 과거 IT 산업 발전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디어와 기술로 무장한 스타트업은 혁신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만 정부는 자국과 해외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8000만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950억원을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
차이잉원 대만 신임 총통은 컴퓨텍스 개막식에 직접 참석해 적극적인 산업 육성과 지원을 약속했다.
그는 “PC·모바일에 이은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강하게 도래하고 있다”며 “대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에 집중해야 할 것이며, 새로운 도전 과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타이베이(대만)=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