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미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 대가로 한국에 10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한다. 지금 환율로 따져도 엄청난 돈이지만 꽃다운 우리 청년들 목숨값이었으니 허투루 쓸 수는 없는 소중한 돈이었다.

많은 국민이 끼니 걱정을 해야 했던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은 그 돈으로 곡식을 사서 나눠주는 대신 서울 홍릉에 과학기술 연구소를 세웠다. ‘물고기를 사주는 대신 낚시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결단이었다. 논란이 있었지만 정부는 굴하지 않았다.
이 연구소는 오늘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됐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 원동력이 된 각종 과학기술 산실이자 요람들이다. 아직도 홍릉 KIST 입구에는 ‘이 시설은 미국 정부의 원조로 세워졌다’는 푯말이 서 있다. KIST 대강당도 당시 미국 대통령 이름을 딴 ‘존슨 강당’이다. 원조를 받은 안타까운 역사지만 그 위에 우리가 일궈낸 오늘을 보면 부끄럽다기보다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할 역사다.
진정한 선진국은 벤치마킹 모델일 뿐 아니라 ‘존경받는 나라’여야 한다. 이는 결국 외교력에서 나온다. 국제사회 여론을 앞장서서 이끌고, 국제사회의 모범이 돼야만 존경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19일부터 23일까지 대전에서 열리는 ‘2015 세계과학정상회의’는 한국이 존경받는 과학강국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세계과학정상회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4년에 한 번씩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만 열던 회의였다. 11년 만에 처음으로 파리 밖에서 열리는 행사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특히 현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창조경제 핵심 성과들도 과시할 수 있다. 선진국은 각종 어젠다를 주도하는 한국의 과학기술을 다시 보게 될 것이고, 우리를 배우려는 개발도상국들은 자신들의 벤치마킹 모델이 생각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특히 과학정상회의에서 채택될 ‘대전선언문’과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세계 과학기술 외교사에 과학한국과 대전 이름을 오래도록 기억되게 할 것이다.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온 과학정상회의에 국민적 역량을 결집해야 할 명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변신한 몇 안 되는 국가다. 하지만 여전히 외국에는 한국 과학기술을 제대로 모르는 나라가 많다. 이번 과학정상회의를 기회로 과학기술 강국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
아직 한국 과학은 목마르다. 그리고 창창한 길이 남았다. 대한민국 미래 50년을 위해 과학정상회의를 또 다른 발판으로 삼아보자.
이부섭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bslee@kof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