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023] 한국형 PC 운용체계 `K-DOS` 개발 <1990년 12월>

국산 소프트웨어(SW) 기술 확보를 기치로 마이크로소프트(MS)에 대항해 이뤄진 한국형 PC 운용체계(OS) 개발은 여러 차례 난항 끝에 이뤄졌다. 1987년 이후 세 차례 무산 위기를 겪은 정부의 시도는 1988년 과학기술처(이하 과기처)의 `특정 연구과제`로 선정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됐다.

[100대 사건_023] 한국형 PC 운용체계 `K-DOS` 개발 <199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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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OS 보고서

특정 연구과제는 기초 원천기술 확보를 목적으로 한 과기처의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K-DOS 개발 과제의 주관 연구기관이었던 한국컴퓨터연구조합은 `한국형 PC OS 개발` 2차연도 보고서를 1990년 11월 과기처 장관에게 제출, 첫 작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세상에 선보인 K-DOS는 기술적으로 MS-DOS에 비견되는 기능과 호환성까지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논리에 부딪혀 상용화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산 기술 확보로 한국 IT역사를 바꿔놓을 수 있었던 의미있는 성과였지만 상용화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역사의 뒤편에 묻혀 버렸다.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한국어 OS` 만들자=1988년 한국컴퓨터연구조합이 주관한 K-DOS 개발 프로젝트에는 금성소프트웨어를 비롯한 4개 업체 및 기관이 참여했다. 최상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전문위원(당시 K-DOS 개발팀장)은 “기획과 고민을 거쳐 연구 방향을 잡는 데만 1년이 걸렸다”면서 “사용자는 `한글화`를 이루고, 산업적으로는 `자체 기술 확보`가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고 회고했다.

개발팀은 기존 MS-DOS가 영어로 돼 있는 만큼 한국어로 된 `쉬운` OS가 필요하다는 핵심 목표를 잊지 않았다. 한국컴퓨터연구조합에 연구실을 꾸려 최 팀장을 주축으로 산·학 전문가 20여명이 참여해 2년간 개발 작업이 이뤄졌다.

1990년 12월 시제품이 배포된 이후 업그레이드 버전도 선보였다. K-DOS는 데이터와 메시지가 한글화되고 명령어까지 한글로 처리가 가능했다. DOS 명령어를 모르는 초등학생을 포함한 일반 국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예컨대 `COPY`를 `복사`로 입력하면 됐다.

MS-DOS로 만들어진 파일을 그대로 쓸 수 있었고, 처리 속도와 MS-DOS 호환성을 갖추면서 기술적 성과도 높았다. 당시 비교 평가 결과 K-DOS는 MS-DOS에 비해 프로세서 및 메모리 속도 등 몇 가지 측면에서 오히려 성능이 앞섰다. 영어 명령도 가능해 모든 IBM 호환 기종에서 작동했다.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대도 컸다. 가격이 MS-DOS의 60~70%에 불과했을 뿐 아니라 당시 국내 시장 95%를 차지하고 있던 MS-DOS 라이선스 금액도 아껴 외화 절약 기회도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당해 MS-DOS 라이선스료로 지급된 금액은 약 60억원이었으며 이는 PC 가격을 높이는 요인이었다.

기초 원천 기술 개발의 정부 의지가 반영된 K-DOS는 MS와 대등한 기술 수준을 자랑하면서 MS-DOS의 주가를 폭락시킬 만큼 이슈가 됐다. 틈새시장을 공략하던 DR-DOS와 함께 국내 DOS 시장에서 MS 독점을 깨고 3강 DOS 체제로의 개편을 예고하는 듯했다.

◇상용화 문턱서 좌절…MS 견제 넘지 못하다=기본적으로 PC에 탑재돼야 하는 OS의 특성상 K-DOS는 개발 완료 이후에 PC 업체의 선택을 기다려야 했다. 결과적으로 PC 업체는 K-DOS를 PC에 탑재하지 않았다.

이유는 PC 업체와 MS와 라이선스 계약 방식이었다. OS를 대량으로 구입할수록 개당 가격을 낮출 수 있는 PC 업체에는 MS와 계약 물량을 줄이는 것 자체가 손해였다. K-DOS의 낮은 인지도, 그리고 외산을 원하는 최종 사용자들의 요구도 한몫했다.

당시 MS-DOS는 수량 단위 패키지 방식, 혹은 시리즈 전 모델 및 특정 PC 모델을 초기에 일괄 계약하는 방식, 또 PC 업체가 판매하는 모든 PC의 CPU 단위만큼 계약하는 CPU 비례방식 등으로 PC 업체에 OS를 공급했다. 국내 대기업들은 OS를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CPU 방식으로 계약을 하고 있었고, 이는 K-DOS를 이중으로 채택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다. 공공 시장에 적용하려던 정부 계획도 현실화하지 못하면서 K-DOS는 상용화 길목에서 좌절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K-DOS는 독점 시장을 지키고자 하는 MS의 견제 정책과 PC 업체의 시장 논리를 넘지 못해 상용화에 실패했다. MS의 라이선스 정책은 비난을 샀지만 PC 업체의 경영난과 재고 부담에 힘입어 독점 지위를 이어갔고 `한국형 SW 독립`의 꿈은 멀어져 갔다.

한편 K-DOS는 조기 교육에 적합하다고 판정돼 1993년 전국 초등학교 교육용 PC의 OS로 보급이 시도됐으며 이 성과를 마지막으로 역사에 뒤안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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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전문위원(당시 K-DOS 총괄연구책임자)

◆ 최상현 K-DOS 총괄연구책임자(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전문위원)

1988년 시작됐던 K-DOS 개발 프로젝트를 맡아 이끈 최상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전문위원(66·당시 금성소프트웨어연구소장)은 K-DOS 아이디어 제시부터 개발 전반을 지휘한 주역이다.

한국전력공사(KEPCO) 전자계산소를 거쳐 KIST 연구원을 역임한 최 전문위원은 1980년대 당시 국내 몇 안 되는 PC 전문가였다. 최 전문위원은 “우리나라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자체 개발을 시도하자는 노력이 K-DOS 프로젝트로 이어졌고 데이터베이스(DB)와 OS의 국산화 개발이 시도됐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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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OS 이후 16년 만에 등장한 한국판 윈도 ‘티맥스윈도’ 발표회에서 참석자들이 새 OS를 시연하고 있다.

시스템 소프트웨어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추진된 K-DOS의 핵심 사상은 일반인에게도 PC를 `친숙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한글화는 중요한 과제였다. 마포 소재 한국컴퓨터조합연구원에서 이뤄졌던 개발 현장을 떠올리던 최 전문위원은 “당시 정부(과학기술처)는 기초 기술 확보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고 특정 연구과제도 순수 원천기술 확보 목적을 가진 프로그램이었다”며 “이 특정 연구과제 개발 자체는 다방면으로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과학 기술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고 기억했다. 또 K-DOS 프로젝트에 금성소프트웨어가 참여할 수 있었던 데는 당시 금성그룹(현 LG그룹)의 지원도 컸다고 덧붙였다.

기술적으로 뒤처지지 않았지만 상용화 길목에서 뒤돌아서야 했던 점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지금처럼 국력이 뒷받침된 상황이라면 당시 겪었던 문제를 넘어설 수 있었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 전문위원은 “당시 PC업체들은 K-DOS를 대량으로 선제 구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시장에서는 초기에 안정된 제품을 원하는 사용자 요구도 있는데다 MS는 선발주자인 만큼 시장을 지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 “실제로 당시 좋은 국산 소프트웨어들이 개발됐지만 외산 제품 인지도 등 장벽을 넘지 못해 상용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수많은 기술이 사장됐다”고 말했다. 일부 호환 기능 개발에 우여곡절을 겪은 것도 선발주자였던 MS가 인터페이스 소스를 공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법적 규제로 이 같은 일을 막을 수 있는데다 국력이 강해져 당시 같은 일은 재현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봤다. 최 전문위원은 “K-DOS가 기술적으로 동등하거나 우세했지만 상용화에 실패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우리나라 SW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졌다”면서 “강해진 국력과 함께 TV·모바일 등 제품과 응용 프로그램들이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떨치고 있어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단지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제도와 문화가 함께 뒷받침된다면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상업적 응용 프로그램 기술보다 기초 기술에 투자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도 드러냈다. 다만 ICT 기초 투자를 주관할 부처가 없다는 점은 안타까워했다. 최 전문위원은 “지금 우리나라는 응용 기술 대비 몇 배 투자가 소모되는 기초 기술을 시도하고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면서 “단기 효과 중심이 아닌 장기적 방향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원천 기술 개발을 정부에서 주도한다면 큰 힘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표] K-DOS 개발 과정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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