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학년때 교수 한 분이 ‘통계의 마술’이라는 책을 추천했다. 서점에서도 찾을 수 없어 학교 도서관을 뒤져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은 미국 사회통계학자 대럴 허프가 1954년에 펴낸 ‘통계로 거짓말하는 법(How to Lie with Statistics)’을 번역 출간한 것이다.
‘거짓말에는 3가지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영국 정치가 벤자민 디즈레일리의 말로 책은 시작된다. 저자는 통계가 사람을 선동하기 위해, 혹은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없는 사실을 부풀리고, 있는 사실을 은폐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최근 벌어진 몇 가지 사건을 보고, 이 책을 다시 떠올렸다.
전경련과 대한상의, 무역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가 내년도 수출입 전망 자료를 발표했다. 전경련 조사에서는 10개 주요 품목 중 8개 분야에서 수출 증가가 예상됐고, 대한상의 조사에서는 응답기업 88.0%가 내년 수출이 올해와 비슷하거나 늘어날 것이라고 응답했다. 무역협회도 내년 사상 처음으로 수출이 6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치를 내놨다.
하지만 전경련은 각 부문별 수출 증가율이 올해보다 낮아질 것이라는 이유로, 대한상의는 증가를 예상한 기업이 전년보다 5.6%포인트 줄었다는 이유로 ‘수출 위기’를 경고했다. 물론 대내외 경제여건은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보고서에는 실제 상황에 대한 우려보다 환율 등 각종 경제정책에서 기업들에게 좀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달라는 의도가 더 많이 묻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목적으로 통계를 들먹인다. 하지만 때론 그 주장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경제는 심리다.
한국을 대표하는 2대 경제단체에서 자꾸 어렵다고만 하면, 가계나 기업은 허리띠를 더 졸라매게 된다. 내년 한국 경제를 지탱해 줄 내수마저 위축될까 염려된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